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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산행기

비슬산[琵瑟山] 산행(2)

* 봄철에만발하는 비슬산의 참꽃군락지와 대견봉의 경치(2009년 4월 17일날 촬영한 사진임)

 

청룡지맥 분기점이자 헐티재(비슬지맥) 갈림길의 돌탑봉

 

용천사와 유가사 갈림길 안부인 마령재를 내려와...

 

조화봉까지 거의 평탄한 참꽃길을 걷는다

 

예년에 비해 한참이나 늦은 참꽃 망울

 

월광봉 오름길에서 바라본 비슬산의 전경

 

이정목과 쉼터도 산듯하게 마련되어 있다

 

소나무 몇그루만 있는 월광봉(1003m)의 산정

 

월광봉에서 바라본 비슬산 대견봉의 전경

 

황량하게 보이는 1034봉 아래참꽃군락지

 

조화봉을 보면서....

 

억새와 참꽃군락지 한켠에 소나무 쉼터

 

바위를 지나면 한창 만발한 참꽃이 군락을 이루었는데???

 

참꽃 대신에 억새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억새와 어우러진 조화봉

 

매년마다 퇴색되어가는 비슬산의 참꽃군락지

 

전망바위에오르면 조화봉의 풍경거리를 제공해 준다

 

비슬교 입구의 강우레이더관측소의 표석을 지나 조화봉으로....

 

돌탑을 헐어버리고 해맞이 제단이 설치되어 있다

 

조화봉(1,058m) 정상의 풍경

 

대견봉과 월광봉

조화봉에서 조금 당셔보면 대견사지가 보인다

 

비슬교와 조화봉 강우레이더 관측소

 

톱(칼)바위

 

부처바위와 대견사지

 

대견사지 바위전망대

 

대견사지(址)9세기 신라 헌덕왕 때 중국 당의 황제가 이곳에 절과 3층석탑을 짓고 대국에서 본 절이라 하여 대견사라 이름 지었다고
전하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지금은 빈터에 주춧돌과 석축만 남아 있으며, 석탑도 도괴되어 부재가 흩어져 있던 것을
1988년 달성군에서 복원하였다고 한다

 

아직 봄이란 생각이 들지않는 대견사지

 

대견사지의 암석군

 

대견사지 마애불

 

벼락에 두개층이 날아가다시 복원한대견사지 삼층석탑[]

 

 

대견사지에서 바라본 조화봉

 

황량한 참꽃군락지와 대견봉

 

대견사지 인근에 있다 하여 예문헌에 대견봉이라 부르는 1034봉

 

형제바위

 

꽃망울도 피지 않았는데 아마 5월초쯤 만개할 것 같다

 

1034봉의 팔각정

 

1034봉에도 전망대가 새로 놓여있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조화봉

 

관기봉과 비들산의 전경

 

억새가 한창인 959봉과 대견봉을 보며 수성골로 하산...

 

참꽃터널을 지자...

 

홀로 버티고 있는 소나무

 

소나무 아래 전망바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급경사 너덜길을 내려오니....

 

884봉 인근에 내려오니 참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다

 

 

 

 

수성골에서 바라본 비슬산 병풍듬

 

류가사 계곡인 수성골의 풍경

 

앙증맞게 수성골 반석위에 작은 돌탑도 마련되어 있다

 

 

유가사의 전경

 

대웅전 마당에 연등이 설취되어 있다

 

시방루

 

돌탑과 노송이 어우러진 유가사의 풍경

 

대여섯 걸음 뒤엔 일연 스님의 '讚 包山二聖 觀機 道成'(찬 포산이성 관기 도성) 시비
유가사에서 비슬산(옛 이름은 包山 또는 苞山)과 인연이 있는 두 성사(聖師)를 기리기 위해 지난해 5월 시비를 세웠다고 한다

 

유가사 입구에는 오현 스님(백담사)의 '비슬산 가는 길'이란 시비가 자리하고 있다.

 

 

비슬산[琵瑟山]비슬산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비슬산 정상의 바위 모양이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 '비슬'이라는 이름이붙여졌다고 전한다. '신동국여지승람'에는 비슬산이 포산(苞山)으로 기록되어 있고 비슬이란 말은 범어(梵語·예전 인도어)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채수목 전 달성문화원장은 "신라 때 인도의 스님이 비파 모양이라는 의미로 비슬산이라고 했고조선 때는 비슬산의 한자가 '포(苞)'를 의미하기 때문에 '포산'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현풍(玄風)은 예전 포산으로 불렸다"고 했다. 비슬산은 옛날 천지가 개벽할 때 온통 물바다가 됐는데 비슬산만 높아서 남은 곳이 있었는데 그때 남은 바위에 배를 매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이 바위의 형상이 비들기처럼 생겨 '비들산'으로 불리다가 '비슬산으로 불리게 됐다는 주장도 있다. 비슬산은 다양한 전설을 갖고 있는 만큼 그 역사와 신비함을 아직도 간직한 곳이다.우리 조상들은 비슬산을 신령스런 곳으로 여기며 숭앙했다. 예전 비슬산이 호랑이·곰 ·나무 ·돌 등을 믿는 토템신앙의 근원이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대구시민의 여가·휴식의 공간으로, 친근한 웰빙 장소로 거듭나고 있다.

 

비슬산의 3봉(峰)으로 불리는 대견봉과 조화봉(照華峰·1,058m), 관기봉(觀機峰·990m)은 저마다의 전설을 갖고 있다.대견봉은 신라 때 중국 당나라 황제가 어느 날 세수를 하려는데 대야 물속에서 험한 지형에 웅장한 절(寺刹)이 세워져 있는모습을 본 데서 유래됐다. 당나라 황제가 중국 곳곳을 뒤졌으나 찾지 못하자 이웃인 신라에 사람을 보내 찾은 것이 바로비슬산 대견사지였다. 황제가 신라에 돈을 보내 절을 짓게 하고 중국에서 보았던 절이라고 해 대견사라고 명명했고 제일높은 봉우리를 대견봉이라고 했다고 한다.

 

[대구의 떠오르는 명산 비슬산] 대견봉일까 천왕봉일까?

 

'대견봉'인가, '천왕봉'인가. 비슬산 최고봉(1083.6m)의 명칭은 현재에도 논란중이다. 국립지리원을 비롯해 최근 발간된 지도나 책 대부분은 정상을 '대견봉(大見峰)'으로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유가사 등 사찰과 주민들은 최고봉을 '천왕봉(天王峰)'으로 부르며 현재 표기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슬산 정상에는 '대견봉'이라는 표지석이 우뚝 서있다. 1997년 현풍 유림이 이곳에 대견봉이라는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대견봉이라는 표지석은 원래 대견사지 위쪽 봉우리에 조그맣게 세워져 있었으나 이를 뽑아내고 화강암으로 크게 만들어 옮겨 세웠다. 채수목 전 달성군문화원장은 "1844년에 발간된 현풍읍지에 대견봉이 비슬산의 최고봉으로 명확하게 기록돼 있다"며 '천왕봉' 명칭을 일축했다. 최근 지역에서 발간된 '비슬산'(대구시·경북대 간)과 달성마을지(달성문화원 간) 등에도 최고봉을 대견봉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최고봉을 '천왕봉'으로 부르자는 의견도 만만찮다. 유가사는 지난해 5월 삼국유사를 지은 보각국사 일연의 시비를제막하면서 비슬산의

주봉

을 천왕봉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정원재 대구시 교통국장도 '100인 포럼' 기고(2007년 12월호)를 통해 비슬산 정상을 '대견봉'이 아니라 '천왕봉'이라고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국장은 "산 아래 주민들이 아직도주봉을 천왕봉이라고 말하고 있고 대견봉과 대견사지와는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으며, 조선초

사료

에 천왕봉이라는지명이 나온다"며 "비슬산의 주봉은 천왕봉이며 대견봉은 대견사지 서쪽에 있는 다른 봉우리를 말한다"고 설명했다.주민들은 지리산, 가야산, 계룡산, 속리산의 주봉이 천왕봉으로 불리고 있는 것 처럼 비슬산 주봉도 '천왕봉'으로 불려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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