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찰풍경

(125)
황악산 직지사 * 능여가 절터를 잴 때 자를 쓰지 않고 직접 자기 손으로 측량한 데서 붙여졌다고 하는 직지사 대웅전 일주문 새로 보수한 대양문 금강문 4대천왕이 있는 천왕문 만세루 대웅전은 임진왜란때 소실되었으나 선조 35년(1602) 사승 인수,명례 등에 의하여 중창되었다 성좌각 포대와상 사명각나한상을 모시고 있는 응진전 명부전 천불상을 모시고 있으므로 천불전이라고 한다는비로전 동방유리광정토를 표출시킨 법당으로 약사여래가 봉안되어 있는 약사전 황악루부도 남월료 만덕전 동국제일가람 황악산문 직지사[直指寺]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代項面) 황악산(黃嶽山)에 있는 사찰.고구려의 아도(阿道)가 지었다는 설이 있으나 현재 사적비(寺蹟碑)가 허물어져 확실한 것은 알 수 없고,418년(눌지왕 2)에 묵호자(墨胡子)가 경북 구미시에..
청도 운문사와 북대암 * '호랑이 호(虎)'에 '웅크릴 거(踞)'즉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의 산이라는 뜻인 호거산 운문사의 대웅보전만세루(萬歲樓)· 응진전과 조영당법륜상 두개의 대웅본전 가운데 삼세불을 모신 대웅보전 보물 석조여래좌상과 사천왕 석주를 모신 작압전((鵲鴨殿)·작압(鵲鴨)명부전 처진 소나무(천연기념물 제180호)범종루 운문사 경내에서 바라본 북대암과 복호산(지룡산성) 운문사[雲門寺] 경북 청도군 운문면(雲門面) 호거산(虎踞山)에 있는 사찰.560년(진흥왕 21)에 창건된 것을 608년 원광국사(圓光國師)가, 신라 말기에는 보양국사(寶壤國師)가 중건하였다.1105년(고려 숙종 10) 원진국사(圓眞國師)가 중창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당우 일부가 불탔고, 현재 대웅보전(보물 835)·작압전(鵲鴨殿)·미륵전·오백나..
화왕산 도성암[道成庵] * 화왕산 자하골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도성암[道成庵]의 대웅전 종각을 겸하고 있는 보제루 칠성각으로 쓰였던 요사채 삼성각 도성암[道成庵]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화왕산 기슭에 있는 사찰이다.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신라의 고승 지월선사가 810년(신라 현덕왕 2)에 창건하였다고전해지나 정확한 것은 아니며 그후 오랫동안의 연혁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 없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터만남아 있다가 화왕산 자하골의 한 암자가 풍수지리가 나쁜 곳에 자리한 탓에 산 아래 주민들에게 각종 재난이 끊이지 않는다하여 이를 막기 위해 재건립되었다 한다. 종각을 겸하고 있는 보제루 누각 아래의 계단을 지나면 경내 중앙에 대웅전이 있고,대웅전 오른쪽에 칠성각으로 쓰였던 요사채, 그..
금오산 법성사[法城寺] * 구미 금오산(金烏山, 977m) 기슭에 자리한 법성사(法城寺)의 대웅전 법성사[法城寺]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산358-2번지 금오산 자락에 있는 사찰이다.구미 금오산(金烏山, 977m)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1962년 7월 해운사(海雲寺) 주지로 부임한 지우(智愚)스님이현 절터에 토굴을 마련하여 수행한 것이 법성사의 출발점이라고 한다. 1991년 4월부터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정면 3칸 규모팔작지붕의 대웅전, 2층 누각형식의 종각, 천불전, 요사채, 종무소 등이 갖추어졌다.
성주 선석사(禪石寺) * 새로운 절터에서 큰 바위가 나왔다 하여 터닦는 다는 뜻을 가진 ‘선(禪)’자를 넣어 선석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함 선석사의 전경 중창 불사중인 천왕문 칠성각 명부전 산신각 원음각 국내 유일의 태실법당(소중한 자녀의 태를 동체대비하신 부처님의 품안에 모시고 기도할 수 있는 태장전) 선석사의 전각 중창 불사중인 천왕문 선석사(禪石寺)경북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217번지의상대사가 692년(효소왕 1) 전국에 10개의 절을 지을 때 신광사(神光寺)라는 이름으로 건립하였다.창건시에는 현재 위치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고려시대에 와서 나옹대사가 신광사의 주지로 있던1361년(공민왕 10)에 절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나옹대사가 새로 절터를 정하고 터를 닦을 때 큰 바위가 나왔으므로 절 이름을 터닦을 선(禪)..
천태종 구인사[救仁寺] *1945년에 건립되었으며 대한불교 천태종의 총본산인 구인사[救仁寺]의 절문, 일주문의 풍경(SCH-M715폰카 촬영) 구인사[救仁寺]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永春面) 소백산 기슭에 있는 절.대한불교 천태종의 총본산으로1945년에 건립되었으며, 1966년 현대식 콘크리트조(造)로 지은 이색적인 건물이다.한국 천태종의 중흥조(中興祖)인 삼척 출신의 상월원각(上月圓覺:속명 朴準東)이 1942년 중국 티베트 등지에서곤륜산(崑崙山)·오대산(五臺山)의 문수도량(文殊道場)과 아미산(峨嵋山)의 보현성지(普賢聖地) 등을 순례하고, 광복 후귀국하여 1945년 초 소백산에 들어가 구봉팔문(九峰八門)의 연화지(蓮華地)를 찾아 천태지관(天台止觀)의 터전을 닦기시작하였다. 그뒤 급성장하여 대가람(大伽藍)으로 발전하였는데, 이 ..
한라산 관음사[觀音寺] * 대한불교조계종 제23교구의 본사인 한라산 관음사觀音寺) 경내의 경치 관음사 일주문 부처님상과 천왕문 천왕문 대웅전 독성각,칠성각,산신각 범종루와 석탑 미륵불 범종루 제주대불(초전법륜상) 부처님상과 일주문 대한불교조계종 제23교구 본산으로서 제주도의 30여 개 말사를 관장한다. 창건자 및 창건 연대는 미상이며 제주에 잡신이많다 하여 조선 숙종 때 제주 목사였던 이형상(李衡祥)이 많은 사당과 함께 사찰 500동을 폐사하였을 때 폐허가 되었다. 현재의 관음사는 비구니 안봉려관(安逢麗觀)이 승려 영봉(靈峰)과 도월거사(道月居士)의 도움으로 1912년에 창건한 것이다.처음에는 법정암(法井庵:관음사의 전신)이라 하였으며 창건 당시 불상과 탱화는 용화사(龍華寺)와 광산사(匡山寺)에서옮겨 왔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
팔공산 파계사[把溪寺] * 팔공산(八公山) 서쪽 기슭에 자리잡은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인 파계사 원통전 세속의 세계를 벗어나 부처님의 세게로 들어서는 첫번째 관문인 일주문 아홉 갈래나 되는 절 좌우의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모은곳수령 250년의 영조 임금나무범종각진동루(鎭洞樓)파계사라는 이름으로는 부족하여 기를 진압한다는 뜻에서 ‘진동루(鎭洞樓)’라 불렀다관세음 보살을 주불로 모시는 파계사는 대웅전이 없고, 원통전[圓通殿]이 대웅전을 대신하고 있다숙종,영조,정조의 어필(御筆)을 보관하였기 때문에 어필각(御筆閣)이라고도 불리는 기영각[祈永閣] 지장보살을 모시고 죽은 이의 넋을 인도하여 극락왕생 하도록 기원하는 기능을 하는 전각인 지장전 극락전[極樂殿] 파계사는 통일신라 애장왕 5년(804)에 심지왕사가 지었다고 전한다.이 ..
팔공산 은해사[銀海寺] * 809년(신라 헌덕왕 1) 혜철국사(惠哲國師)가 해안평(海眼坪)에 창건한 사찰인 은해사의 극락보전 일주문보화루 은해사 다실로 이용되고 있는 심검당 설선당 지장전 범종루 비구니 스님의 동량인 백홍암 백홍암 보화루 중암암 뒷편의 삼인암 중암암의 삼층석탑 중암암 천왕문 은해사[銀海寺]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淸通面) 팔공산(八公山)에 있는 사찰 전국 31본산(本山)의 하나이자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이다. 809년(신라 헌덕왕 1) 혜철국사(惠哲國師)가 해안평(海眼坪)에 창건한 사찰로 처음에는 해안사(海眼寺)라고 하였다. 그후 1264년(고려 원종 5)에 홍진국사(弘眞國師)가 중창·확장하였는데, 1545년(조선 인종 1)에 소실되어 1546년(명종 1)에 천교(天敎)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었다. 그..
팔공산 송림사[松林寺] * 진(陳)나라에서 귀국한 명관(明觀)이 가지고 온 불사리(佛舍利)를 봉안하기 위하여 창건한 사찰 중창 불사중인 일주문 불교사찰에서 법종을 두는 범종루 삼천불전(보물1606호) 명부전 대웅전(보물 1605호)응진전 산령각 오층전탑(보물 189호) 요사채(선열당) 삼성각 송림사 경내 송림사[松林寺] 544년(진흥왕 5) 진(陳)나라에서 귀국한 명관(明觀)이 가지고 온 불사리(佛舍利)를 봉안하기 위하여 창건한 사찰.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東明面) 구덕리 가산(架山) 남쪽 기슭에 있으며, 동화사(桐華寺)의 말사(末寺)이다.1092년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창하였고, 몽골의 침입으로 폐허화하였다. 1597년과 1858년 두 차례 중창하였으며,현존 당우로는 대웅전과 명부전(冥府殿) 및 요사채가 있다. 대웅전 앞..
앞산골의 사찰풍경 * 고려 태조 왕건이 공산전투에 패해 도망친뒤 잠시 쉬어간 절이라는전설이 깃든임휴사(臨休師)의 전경청룡산 가는길, 426봉에서 바라본 임휴사나팔바위에서 바라본 임휴사 임휴사 백팔계단길 임휴사 대웅전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백제 견훤에게 패하여 이 곳에 숨은 적이 있다는 안일사[安逸寺] 앞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안일사 사자바위에서 바라본 안일사안일사 대웅전 공룡능선과 안일사 청룡산 가는길, 426봉에서 바라본 달비골 앞산 중턱에 위치한 원기사 환경단체에서 한국의 명수로 정한 황룡샘 태조 왕건이 공산전투때 대패한 후 3개월간 머물렀다는 은적사(隱跡寺)은적사(隱跡寺) 대웅전 대덕사 대웅전 성불사 법장사[法藏寺] 법장사 창건 연대를 추정하게 해주는 삼층석탑
팔공산 부인사[符仁寺] * 고려 초조대장경(初彫大藏經)을 판각한 곳으로도 유명한 절집인 부인사의 대웅전 삼광루와 새로 조성된 삼층석탑 선덕여왕 초상화를 모신 숭모전명부전 영산전 산신각 부인사[符仁寺]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팔공산 남쪽 중턱에 있는 절.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로, 부인사(符印寺) 또는 부인사(夫人寺)라고도 한다. 창건연대와 창건자는 알지 못한다. 예부터 사당인 선덕묘(善德廟)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신라 선덕여왕때 창건된 절로짐작할 뿐이다.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39개의 부속암자를 관장하였고 2천여 명의 승려가 머물며 수도하였다고 한다. 고려 현종 때부터 문종 때까지 도감(都監)을 설치하고 고려 초조대장경(初彫大藏經)을 판각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판각은 몽골의 칩입으로 대부분 소실되었고,..
군위 지보사[持寶寺] * 신라 문무왕 13년 의상(義湘)이 창건 당시에 맷돌과 가마솥·청동향로 등 3가지 유물을 지녔다고 해서 붙여진 지보사의 전경 문루 삼층석탑(보물 제 682호)대웅전 무염담부도 지보사[持寶寺] 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 상곡리 선방산(船放山)에 있는 사찰.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673년(신라 문무왕 13)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 절 이름은 창건 당시에 맷돌과 가마솥·청동향로 등 3가지 유물을 지녔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창건 이후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는다. 1942년 천오(天梧)와 동허(東虛)가 중수하여 오늘에이른다. 현재 건물로 대웅전과 누각·요사가 있다.유물로 지보사삼층석탑과 1826년(조선 순조 26)에 제작된 현판 지보사등촉계창설기, 1655년(효종 6) 제작된..
청도 대적사[大寂寺] * 876년(신라 헌강왕 2) 체징(體澄)이 창건하였으며 보물 제836호로 지정된 대적사 극락전(2010.05.30) 천왕문 명부전 산령각 천왕문 대적사[大寂寺]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학산(洞鶴山)에 있는 사찰.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876년(신라 헌강왕 2) 체징(體澄)이 창건하였으며, 고려 초기보양(寶壤)이 중창하였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탄 뒤 1635년 중건하고 1689년(숙종 15) 서월(瑞月) 성해(性海)가 중수하였다. 그러나 이후의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건물로는 극락전과 삼성각·향각·천왕문·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보물 제836호로 지정된 대적사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기단 소맷돌에용비어천도(龍飛御..
합천 영암사지[靈巖寺址] * 황매산 모산재 암릉 순결바위아래 자리잡은 영암사지의 풍경 쌍사자 석등 삼층석탑(보물 제480호) 귀부터 귀부(보물 제489호) 순결바위에서 바라본 영암사지 합천 영암사지[靈巖寺址] 경남 합천군 가회면(佳會面) 둔내리(屯內里)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사찰 터.사적 제131호.1964년 지정. 면적 3,812m2. 경남 서부의 가야산과 지리산을 연결하는 중간 지점의 황매산(黃梅山) 남쪽기슭에 있으며, 영암사라는 절 이름도 주민들 사이에서 구전되어 오지만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다만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탁본으로 남아 전하는 (1023년 건립)의 비문을 통하여고려시대 이곳에 영암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절터에는 금당지(金堂址) ·서금당지(西金堂址) ·중문지(中門址) ·회랑지(廻廊址) 등의 건물터와 3..
군위 인각사[麟角寺] * 보각국사 일연스님의 진영이 모셔져 있는 국사전 명부전 산령각 보각국사비명 보각국사 일연선사 정조지탑 인각사[麟角寺] 경북 군위군 고로면(古老面) 화북리(華北里)에 있는 고려시대 명찰(名刹)1992년 5월 28일 사적 제374호이다. 지정면적은 1만 3302㎡이다. 화산(華山:760m) 최북단 기슭, 위천(渭川)변의 퇴적지에있다.인각사는 1991년 말 경북대학 박물관에서 실시한 발굴조사를 통해 대웅전터로 추정되는 기단부(基壇部)에서 통일신라시대의유구가 확인되어 신라 말기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고려시대에는 전국 굴지의 명찰로 번성하여 국존(國尊:國師)일연(一然)이 1284년(충렬왕 10)부터 임종할 때까지 5년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저술한 곳으로도 널리알려져 있으며, 그 이름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