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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산행기

아들과 함께 화왕산 산행

* 옛날 화산활동이 활발하여 불뫼·큰불뫼로 불리기도 하였던 화왕산정상의 푸른하늘

1. 산 행 지 : 화왕산(756m) / 경남 창녕군

2. 산행일자 : 2011년 09월 14일 / 맑음

3. 산 행 자 : 아들과 함께

4. 가 는 길 :남대구 I.C -창녕I.C - 5번국도- 창녕군 계성면 -1008군도- 옥천매표소(85km, 1시간 05분 소요)

5. 산행경로 : 옥천매표소-일야봉산장-화왕산성 동문-화왕산-배바우-남문-옥천계곡-옥천매표쇼(도상거리 11.2km)

6. 산행시간 : 3시간 40분(12:00~15:40)

7. 산행지도

8. 산 행 기

산성교를 지나면 임도 좌측으로 대형 돌탑이 잇따라 서있다


사방댐과 관룡산과 구룡산의 병풍바위 시원스레 보이고.......


최근 정비를 했는지 깔끔하게 보이는 옥천계곡도 시원하게 보인다


예전에는 산장이었는데 대피소로 운영되고 있다.

차량통행 제한을 위한 문이 앞을 가로막고 있지만 등산객들은 그 틈새로 통과하면 된다.


대피소에 한창인 해바라기


때양볕 임도길을 따라 오르면 이동통신 지지국을 지나 하산길인 제1등산로와 마주한다


임도변 너럭바위에서 잠시.......

계곡을 따라 남문으로 곧장 올라가는 길이 있지만 하산길 날머리로 남겨 두고 일야봉 산장으로.....


옥천계곡의 물소리, 푸른하늘을즐기며, 아들놈을 친구삼아 유유자적하게......


우측 임도길은 청간재와 관룡산 가는길인 듯. 우리는 좌측으로,,,,,,


일야봉 산장에서 아이스바 하나 입에 물고....


다시 언덕배기 숲속으로.....또다시 오르다


숲속길을 나오면 다시 만나는 임도길에 봄철 진딜래 군락지에 억새가 한창이다


너와집,초가집등 옛 집 몇 채가 울타리를 이룬 허준세트장


너와집 위로 청명한 푸른하늘과 흰구름을 거의 100여일만에 보는것 같다

임도길을 10여분 걸으면 화왕산성 동문에 이른다

화왕산성 동문


동문에서 바라본 허준세트장


남문과 배바우, 산성을 돌아서 정상을 밟은후 배바우을 지나 남문으로,,,,,,


화왕평전 용지에 문화재 발굴현장이 부산하게 내려다 보인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큰 공을 세운 화왕산성


산들 부는 가을 바람에 억새가 길게 드러누웠다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푸른하늘 아래 아름답게만 보이는 성곽길이다


한철 뭇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봄,여름 동안 많은 설움을 받아온 가을의 전령 억새


작열하는 뙤약볕 아래 견디어 대자연의 섭리대로눈이 부실 정도로 화사하게 태어났다


성곽에서 바라본 동문과 영취산릉의 풍경


산성의 성곽길은 억새로 어우러져 있다


사람의 키보다 훨씬 더높은 것이 대부분이다


오늘 느림의 미학을느끼고 깨닭는 여유로운 산행이 될 수 밖에 없다

관룡산과 영취산


산상분지인 억새평원(동문-정상-서문-배바우-남문) 둘레길을 걷는 되는 약 1시간 정도 소요된다


722봉에서 바라본 비슬산과 비슬지맥의 능선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와 서문이 있는환장고개


2년전 슬픈기억과 아찔한 사연이 있는 배바우


산들 부는 가을 바람에 억새가 길게 드러누웠다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억새숲을 헤치고 나올꼿도 여러곳에 있다


가을 한철 뭇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봄 여름 동안 많은 설움을 받아온 가을의 전령 억새


재약산 사자평, 천성산 화엄벌, 신불산 신불평원, 간월산 간월재, 부산의 승학산도 억새 산행지로 유명하지만

창녕 화왕산처럼 억새와 더불어 볼거리가 많은 곳은 드물 듯하다

화왕산성 성곽과 관룡산,영취산의 풍경


화왕산 북릉 넘어로 보이는 청도 남산과 화악산


기암괴석과 암봉으로 뒤덮인 산세는 산행의 재미를 배가시켜주기에 충분하다.

억새가 무성한 고스락에 오르면......


화왕산 북릉과 청도의 산군들이.....


화산활동이 활발하여 불뫼,큰불뫼로 불리기도 하였다는 화왕산의 정상이 가까이.....


화산활동이 활발하여 불뫼,큰불뫼로 불리기도 하였다는 화왕산 정상의 모습


정상에서 한~폼

주변 조망도 탁월해 서쪽으론 창녕읍내와 우포늪 그리고 낙동강과 광활한 평야지대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있는 곳이다

창녕의 기상


총 길이 1.8㎞의 화왕산성 남동쪽은 돌로 성을 쌓았지만 서북쪽은 절벽능선이라 자연성벽이다





가까이서 본 억새의 솜털은 보는 위치에 따라 쉼없이 그 모양과 빛깔을 바꾸며 장관을 이룬다


난전이 펼쳐진 환장고개(이곳 사람들은 이곳을 서문이라 한다)를 지나 배바우로,,,,


정상 인근은 험준한 자연암벽이 성을 대신하고 있다


가운데가 산상 분지로 억새군락지인 화왕평전


배바우로 오른다

배바우 인근의 사자바위형상의 암봉

과거 배를 묶어두었다는 전설이 얽힌 배바우는 지형도상으로 화왕산(756.6m)보다 20㎝ 더 높다


배바우에서 바라본 관룡산과 구룡산 병풍바위의 풍경


산들 부는 가을 바람에 억새가 길게 드러누웠다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만추의 단풍에 앞서 초가을 산행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억새


억새군락이 온통 바람에 몸을 맡겨 흐느적거리고 있고......


남문과 동문으로 이어지는 성곽길


남문에서 계곡을 따라 하산......


계곡 상단부에서 바라본 남문


20m쯤 되는 완경사 슬랩을 내려가면 계곡이 시작이 된다


계곡 상류에는 태풍 탓인지 등로가 망가져 있고 밧어나면 순탄한 평지길이 이어진다


옥천계곡을 우측에 두고 임도길을......



투박한 돌탑이 있는 산성교


* 2년전 화마가 휩쓴 화뢍산 산행기 : http://blog.paran.com/kim22300/30059293

화왕산[火旺山]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에 있는 산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과 고암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경상남도 중북부 산악지대에 있으며 낙동강과 밀양강이

둘러싸고 있는 창녕의 진산이다. 옛날 이 산은 화산활동이 활발하여 불뫼,·큰불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낙동강 하류지역에 솟아 있어 실제보다 우뚝하게 보인다.
이 산은 억새밭과 진달래 군락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정상부에 5만여 평의 억새밭이 펼쳐져 있어3년마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정상 일대의 억새밭에서 억새태우기 축제가 열린다.(현재는 폐지)

매년 10월 초에는 화왕산 갈대제가 열린다.억새는습지에 사는 갈대와 구분되는 것으로 이 산의 정상에 서식하는 식생은

억새이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억새를 갈대로 불러왔던 지역의 전통에 따라 10월에 열리는 행사는 여전히 갈대제로 불리고

있다.
가장 빠른 산행길은 창녕여자중학교 옆길로 들어가서 동쪽으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 자하골로 들어가면서 시작되는데

가파른 환장고개를 넘어 정상으로 오른다. 봄에 진달래를 보기 위해서는 옥천리 매표소를 기점으로 이어져 있는 관룡산의

관룡사에 들렀다가 관룡산 정상을 거쳐 이 산의 정상에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을 억새를 보기 좋은 코스는 창녕여자중학교를 거쳐 도성암을 지나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창녕여자중학교로 하산하는

것이 좋다. 길게 잡아도 4시간 안팎이면 산행을 마칠 수 있다. 산 정상은 밋밋한 분지로 되어 있고 서면 관룡산과 영취산이

지척에 있으며 낙동강을 끼고 있는 평야와 영남알프스의 산들이 보인다.

600m 지대에는 화왕산성(사적 64)이 있다. 삼국시대부터 있던 성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의 분전지로 알려져 있다.

화왕산성의 동문에서 남문터로 내려가는 길 잡초더미 사이에 분화구이자 창녕 조씨의 시조가 태어났다는 삼지()가 있다.

또한 산 정상의 서쪽 아래에는 조선 선조 이후에 축성되었으며 보존 상태가 양호한 목마산성(사적 65)이 있다.

산의 서쪽 사면 말흘리에서 진흥왕의 척경비가 발견되었다. 남쪽 사면에는 옥천사가 있다

화왕산성[火旺山城]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玉泉里)에 있는 가야시대의 석성(石城)이며 사적 제64호로 지정되었다

1963년 지정. 면적 18만 5724m2. 조선 전기의 기록을 보면 둘레가 1,217보(:1보는 6)이며, 성 내에는 샘이 9, 못이 3,

또 군창()이 있었다고 한다.

창녕뿐 아니라 영산() ·현풍()까지를 포용하는 성으로서 군사적으로 주요 요충지였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실용적 가치를 느끼지 못하다가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왜적이 순식간에 대로를 따라 북상하게 되자 이 성의

군사적 가치를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곽재우()의 의병 근거지였으며, 그는 이 성을 굳게 지킴으로써 왜군의

경상우도 침입을 막을 수 있었다. 임진왜란이 소강상태에 들어갔던 1596년(선조 29)이나 전쟁이 끝날 무렵인 1598년에

비변사()는 이 성의 군사적 가치를 재인식하여 산성수축의 긴급함을 건의했다는 기록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