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료실

백두대간 자료실

* 지리산 천왕봉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마루금의 전경


1.白頭大幹의 理解

① 백두대간은 우리의 영산인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한반도의 중심부를 지나는 산줄기로 태백산에 이르러 해안선을

따라 낙동정맥을 보내고 남으로 뻗어가는 산줄기는 소백산.속리산.덕유산을 연이여 낳으며 지리산에 이르러

脈을 다하니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지리서 山徑表에서는 이름하여 “백두대간”이라 “稱” 하였다.

백두대간의 총 거리는1.658.6Km(백두산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거리)이고 향로봉에서 천왕봉까지 남한구간의

백두대간의 거리는 734.65km이다.(포항셀파 기준)

② 우리의 산줄기 체계는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에 한남금북정맥과 금남호남정맥은 한남.금북정맥과 금남.호남정맥의 두 줄기를 분기하기까지의 산줄기로

혼합된 지명을 사용하였으며 백두대간의 속리산 천황봉과 장안치(무령고개)에서 분기한 산줄기들이다.

따라서 모든 산들이 거미줄처럼 엉켜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이에 물줄기가 있어 실 타래 풀어지듯 엉켜지는

부분이 없다는 것이 산줄기의 매력이다.

산과 산 사이에 계곡이 있고 계곡에는 반드시 물줄기 흐르니 山川이 조화를 이루고 그 속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으니 자연의 위대함에 항상 겸손할 줄 알아야 하는 12정맥의 종산과 12종강의 도표를 아래와 같이 정리 한다

2.문헌에 나타나는 백두대간

백두대간이 문헌에 나타나기 시작한 연대부터 최근의 역사를 시대 순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옥룡기(玉龍記))(도선의 비기로 현재 전하지 않는다)에 “우리나라는 백두산에서 일어나 지리산에서 끝났으니,

지세는 물의 근원이요 나무의 줄기와 같은 땅이라,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稗官雜記) 湖僿說)에도 고려사절요에 나타나는 옥룡기의 내용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그 밖에 문헌에 나타나는 백두대간의 역사는 < 백두대간 문헌정리 요약 ('96.3월 산림청 발간) >의 내용을 인용하여

아래와 같이 요약정리 한다.

1402년 :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권근).백두대간의 산줄기가 표시되어 있음.

16세기 경 :『패관잡기』(어숙권)에 보면, 고려 공민왕 때 우필흥이 임금께 올리는 글(上書)중에 우리나라 지세는

백두에서 시작하여 지리에서 끝났다'는 내용이 있음.

1751년 :『택리지』(이중환) 조선 산맥, 백두대맥, 백두남맥, 대간 등의 용어 사용.「산수」편에 대간과 정간

12정맥으로 볼 수 있는 내용 묘사.

1760년 경 :『성호사설』(이익) 「천지문」 편 제목 : '백두정간' 중에 백두대간 용어 사용

1770년 :「여지고」(신경준) 『동국문헌비고』 중의 한편으로 산경표의 뿌리가 됨.

1861년 : 「대동여지도」(김정호) 백두대간이 지도상에 가장 잘 표현되어 있음.

1899년 :『대한지지』백두산은 전국산의 조종으로 지리산에서 끝 난다로 표현.

1908년 :『대한신지지』(장지연) 백두산맥이라 표현

1913년 :『산경표』(조선광문회) 간행번역본. 조선광문회는 '빼앗긴 국토와 역사의 줄기를 되찾으려는 방법의

하나로 조선 구래(舊來)의 문헌·도서 중 중대하고 긴요한 자료를 수집'하여 편찬하였는데 지리서 중

『산경표』를 세번째로 간행함

1980년 :『산경표』(조선광문회)가 이우형의 손에 들어와 <대동여지도>와의 대조 등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됨.

1986년 :『스포츠레저』에 이우형의 권유에 의해 백두대간이란 용어 등장함. 『조선일보』(07/24)에 이우형의

「국내 산맥이름 일제가 바꾸었다」는 기사 실림.

1988년 : 한국대학산악연맹 학술지 『엑셀시오』

1990년 :『산경표』조선광문회본 영인.(박용수 해설. 푸른산)

1993년 :『산경표를 위하여』(조석필. 산악문화),『태백산맥은 없다』(조석필. 사람과 산)은“대동여지전도”의

발문에 실려있는 '산은 물을 가르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山自分水嶺)'는 원리를 산악인의 경험과

지식을 통해 현대적으로 해석, 설명하였음.

2000년 :『한글 산경표』(현진상)은“여지고”등 문헌을 검토하여 『산경표』의 저자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여

『산경표의 저자는 여암 신경준이 아니라 신경준의 「여지고」를 기본으로 1800년대 초에 누군가가

지은 것으로 추정함.

3.산경표의 백두대간

①산경표의 이해

산(山)과 강(江)이 어울린 자연적인 구조에서 원리를 찾는데 목적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산경표(山經表)」를 접할 수 있는 것은 1910년 최남선이 설립 한 조선광문회의 고전 간행 사업때문

이다. 당시 조선광문회는 일본에서 발행된 온갖 신간서적과 우리의 귀중한 고문서를 수 천 권씩 보유하고 있어서

당시의 지식인들이 자주 회합을 갖던 장소였으며, 주요 실 무자는 장지연(張志淵), 유근(柳瑾), 이인승(李寅承)

등이 었다.

·조선광문회에서 1912년 6월 우리나라 지리서 중 가장 청요(淸要)하고 또 인문 지리학의 시초라고 평가받고 있는

『택리지(擇里志)』가 출판된데 이어 1913년 여암 (旅庵) 신경준(申景濬)의 「산경표(山經表)가 출판되었다.

·그 당시에 우리나라 지리에 관한 저서로는 1904년 일본 동경의 환선주식회사에 서 발행한 『한국지리(韓國地理)』

가 있었으며, 이 책은 우리나라 산맥의 계통을 일 본 동경 제국대학의 이학박사인 고또 분지로(小藤文次郞)가

연구한 개요에 따라서 기술하였고 지리 교과서에 사용되었다.

"고또 분지로"는 1900년부터 1902년 사이에 2회에 걸쳐 우리나라를 방문해 14개월간 전국을 답사하면서 우리나라

지형을 연구하였으며, 그의 이론은 지리학적인 분석이 아닌 지질학적으로 분석하고 명명한 것으로 이는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 통치, 그리고 일본 기업과 민간인들의 국내 시장 침투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 때문에 산맥 명칭을 둘러싼 문제점을 우려하여 최남선과 조선광문회에서 「산경표(山經表)」의 간행을

서둘렀다고 보여 지며,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왜곡되어 가는 우리나라 산줄기 갈래와 이름을 바로잡기 위한

민족적 저항 의식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지리 교과서에 실린 산맥의 명칭과 개요는

고또 분지로의 이론을 아무런 검토도 없이 그대로 따르고 있는 형편이므로 이것은 후학들이 연구 노력하여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산경표의 저자인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은 1754년(영조 30)에 증광시 을과 (乙科)에 합격(合格), 승문원(承文院)

에 들어가 성균전적을 지내고, 왕명으로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便覽)』을 감수(監修)하여 그 공으로 승정원

동부승지에 뽑힌 후, 병조참지로 옮겨 [팔도지도]를 감수하였다.

·[여지승람(與地便覽)]은 그 책이름이 뜻하는 그대로 땅 모습을 보기 쉽도록 만 든 책으로, 영조 45년(1769)에

간행(刊行)되었다. ·[여지승람(與地便覽)]은 2권 2책으로 건책(乾冊)과 곤책(坤冊)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이중 건책이 바로 산경표(山經表)이다. 곤책은 「거경정리표(距京程里表)」 로 당시 서울과 각 지역 간의 거리를

표기하고 있다.

·내제목(內題目)이「산경표(山經表)」로 되어 있는 [여지승람(與地便覽)의 건책은 백두대간, 장백정간 등으로

우리나라 산줄기를 나누어 그 밑에 각각 중요 한 산 이름을 적고, 그 옆에 부읍의 지명과 거리를 이수(里數)로

표기하여 산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도록 기술하였다.

아직까지 공인(公認)된 것은 아니지만 1769년 여암 신경준이 펴낸 것으로 되어 있는 족보(族譜) 형식으로

써 내려간 산경표(山經表)라는 지리서(地理書)와 1866년 고산자 김정호가제작(製作)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가

그러한 노력의 한 결실(結實)이라고 볼 수가 있다.

④고지도의 백두대간

①삼국시대

『구당서(舊唐書)』 동이전 고려조에 의하면 '정관2년 파돌궐 서리가한 건무견사봉하 병상봉역도(貞觀2年 破突厥

署利可汗 建武遣使奉賀 幷上封役圖)'라 하여 고구려가 당에 봉역도를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②고려시대

신라말 도선에 의해 일기 시작한 풍수지리설은 이후 고려시대 지리사상에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풍수지리 사상은

조선시대에 이어져 지도상에 내맥(래맥)을 따져 사용한 것도 그 증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목종 5년(1002)에는 고려지도를 거란에 보낸 기록이 있으며(주2 : '내공본국지리도(來貢本國地理圖)'『요사』외기

고려전(『遼史』 外紀 高麗傳)참조), 여말선초에 살았던 이회(1345 ~ 1405)의 「삼국도후서」에 고려도를 소개하였는

데 다음과 같다. 즉 산줄기는 백두산 - 철령 - 풍악 - 태백산 - 소백산 - 죽령 - 계림 - 삼하령 - 추양산 - 운봉으로,

또한 강줄기는 살수·패강·벽란·임진·한강·웅진(이상 서해), 가야진(남해)으로 표기하여 오늘날 백두대간의 주요

산줄기와 그로부터 강줄기를 잘 표현하고 있다

③조선시대

조선 초의 지도로는 이회의 <팔도도>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그가 그렸다는

<역대제왕혼일강리도(歷代帝王混一疆理圖)>(일명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주4 : 이 지도의

16세기 모사본이 현재 일본 쿄토 나라현의 류코쿠(龍谷) 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라는 세계지도에서

그의 <팔도도>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고려시대부터 전해져 오던 고려지도들이 저본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지도의 특징은 하천과 산맥의 표시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인데, 산악을 개별적으로 나타내지 않고

하계망(하계망)과 관련시킨 산맥으로 표시한 것은 이회의 새로운 지도제작 기법이다. 이러한 산맥표시법은 후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에 사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세조 9년(1463)에는 정척(鄭陟)·양성지(梁誠之) 등에 의해 <동국지도>가 완성되었다. 이 지도는 현재 전하여지지

않으나 고려 이후 현존하던 지도를 종합하면서 세종대의 발달된 과학기기로 실측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당시로는 가장 정밀하고 과학적인 지도였을 것이라고 한다.(주5 : 방동인, 『한국지도의 역사』, 85쪽)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지리지로는 『동국여지승람』이 있다. 이것은 도(圖)와 지(誌)를 함께 편집하여 지리지로서의

새로운 체계를 완성하였다. 즉 팔도총도와 각 도의 첫 머리에 해당 도의 전도가 1장씩 들어 있어 모두 9장의 지도가

삽입된 것이다. 이러한 지리서의 개념은 조선 말까지 계속되어 조선지리지의 한 전형을 이루었다.

그후 정상기에 의해 <동국대지도>가 새로운 제작법에 의하여 제작되었다. 그 특징은 1) 백리척을 사용한 축척의

비에 따라 그려졌으며, 2) 지도표 범례를 설정하는 등 세밀하고 정확한 실제 지도이다.

조선시대 고지도를 근대지도로 발전시킨 이는 고산자 김정호이다. 물론 그의 지도계통은 조선 초 이회의

<팔도도>에서 시작되어 정척과 양성지의 <동국지도>로 계승되고, 다시 조선 후기 정상기의 <동국대지도>로

발전하여 <대동여지도>에 이르러 그 완성을 이룬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대동여지도>는 산줄기의 내맥을 명료하게 나타냄으로써 행정구역의 경계가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그런 면에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전통지도의 도법을 따라 우리의 역사·문화·풍속·언어 등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한 지도라 할 수 있다.

참고: 백두대간이 지나는 남한지역의 행정구역은 다음과 같다.(32개 시·군)

(강원도 영월군, 태백시, 삼척시, 동해시, 정선군, 강릉시, 평창군, 양양군, 홍천군, 인제군, 속초시, 고성군, 경상북도

김천시, 상주시, 문경시, 예천군, 영주시, 봉화군, 경상남도 거창군, 함양군, 산청군, 하동군, 전라남도 무주군,

장수군, 남원시, 전라남도 구례군, 충청북도 영동군, 보은군, 괴산군, 충주시, 제천시, 단양군)

-서울대 규장각-

5.산경표와 고지도에 나타나는 백두대간의 상이

산경표와 대동여지도의 집필시기와 제작연도는 100여년의 차이가 난다.

산경표는 정상기의 동국지도와 팔도지도를 참고로 하여 작성 되었으며 대동여지도는 정상기의 지도를 바탕으로

세밀화 되었다.

따라서 대동여지도에 나타나고 있는 산지의 지명이 산경표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산경표가 작성된 시기에서

보면 현재의 지명으로 불려지고 있는 산들은 이름이 없는 무명봉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예) 대동여지도에 나타나고 있는 大朴山(함백산) 등이 대표적인 것으로 산경표가 작성되던 당 시대에는 이름 없는

무명봉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산경표에서는 태백산으로 기록한 것이고 지리산이나 덕유산처럼 여러 개의 봉들이

합쳐진 하나의 집단(山)으로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낙동정맥이 분기하는 현재의 천의봉(매봉산)도 태백산의 한 자락으로 보아 낙동정맥의 시작점이 태백산~

유치~마읍산 으로 기록하였던 것이다.

김정호의 필사본인 청구도와 대동여지도 등은 산경표나 정상기의 동국지도와 팔도지도 보다 100여년 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다 발전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실제로 정상기의 팔도지도와 비교 해 보면 백두대간의 산줄기가 같음을

볼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산경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신경준이나 대동여지도의 김정호는 우리가 배워온 것 처럼 백두대간을

오르고 산을 오르던 사람들이 아닌 학자요, 지도제작자로 각 지방에서 수집된 자료를 참고로 하여 문집이나 지도를

재편집 한 분들에 불과 하다는 것이다.

6.山, 峰, 岳, 臺, 德, 嶺, 峙의 차이 ...

山은 峰이 모아져 하나의 집단을 이룬 것을 칭한다.(예: 천왕봉은 지리산의 주봉이기는 하지만, 지리산에 속한

가장 높은 봉우리 중 하나 일 뿐이다. 그러므로 여러 개의 봉우리 집단을 지리산이라 부른다)

峰은 집단의 객체에서 꼭지 점을 이룬 각 자의 개체를 말하는 것이다.

(예: 천왕봉.중봉.하봉.명성봉.토끼봉 등은 지리산 산군에 속해 있지만 각자의 지명(峰)을 가지고 있다)

岳(嶽)은 산우뚝할봉(峯)과 과 같은 뜻으로 뾰쭉한 산으로 나타내는데 차이점을 비교 해 보면 岳(嶽)은 암봉(바위)

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를 말하고峯은 峰중에서도 우뚝 솟아오른 봉우리를 말하는 것으로 올라가기 어렵다

(인수봉이나 만장봉 등이 있으나 국어사전에는 "峯"으로 풀이하였으나, 백과사전 등에는 "峰"으로 쓰고 있어

백과사전의 오기로 보임)

臺는강경대. 낙수대 경포대등과 같이 정자를 지을 수 있을 정도의 야산이나 산마루 중턱 전망좋은 곳을뜻하는

것으로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곶(串)과 같다.

德은 가목덕.내지덕.검의덕 등과 같이 오늘날의 고원을 뜻하나당시에는 사용치 않았으므로 德을 고원의

개념으로 본다.

嶺.峙.峴는 고개(古介)에 해당한다.

嶺는 대관령, 한계령 조령, 추풍령 등 관방이 설치되어 있던 곳과 교통상 중요한 몫을 하던 곳은 영의 명칭이 붙어

있다.

峴과 峙는 팔량치 .외치 .삼마치 .수유현.부황현, 등이 있으며 峙가 峴에 비해높고 험하다.

따라서 嶺.峙.峴는 모두 고개를 뜻하지만 峙나 嶺은 높고 험한 곳을 말하고,서냥당 고개등 고을의 어귀를

넘나들던 곳을 고개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다.

우리 선조들이 오랜 세월 검증과 고증을 거쳐오면서 발전시켜온 전통지리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두대간이야말로 우리민족의 삶의 터전인 이 땅을 가장 정확하게 읽어내고 표현해 낼 수 있다. 산줄기가 강을 넘고 바다를 건너는 산맥의 혼돈을 바로잡아 줄 수 있는 대안이 바로 백두대간이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일제의 침략정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산맥개념은 하루속히 우리의 전통지리관인 백두대간으로 교체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도만 가지고도 우리의 산줄기와 강줄기의 근본을 알 수 있고, 우리 민족사의 굴곡들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 백두대간, 살아 꿈틀거리는 불가항력의 힘이 느껴지는 거대한 산줄기는 바로 이 땅의 역사 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백두대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그 체계를 정착 시켜 나간다면 머지않아 백두대간이라는 가슴 벅찬 이름이 제대로 대접받는 날이 올 것이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산이 곧 분수령이다.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 한반도의 등뼈를 이 루는 백두대간은 동과 서를 크게 갈라놓은 산줄기임과 동시에 동해안, 서해안으로 흘러드는 강을 양분하는 역할을 한다. 태초에 백두대간에서 뻗어내린 산줄기들은 저마다 대간의 저력 을 닮은 모습으로 한반도 구석구석으로 가지를 쳤다.
그렇게 해서 대간(大幹), 정간(正幹), 13개의 정맥(正脈)을 일구어 냈다. 기둥 줄기인 대간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10대 강을 경계 짓는 분수산맥(分水山脈)인 정맥들이 국토의 뼈대가 되고 있다. 백두대간은 1625여km에 이 른다. 우리가 아직 가볼 수 없는 북녘 땅에는 2000m급의 고봉들이 줄이어 있다. 남쪽에는 지리산에서 향로봉까지 약 670km에 이르는 거리에 설악산, 태백산, 속리산, 덕유산 등을 품 고 있다. 한반도를 일군 백두대간은 대륙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하여 한반도와 대륙을 잇는 기운으로, 이 땅의 근본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 한다.

백두대간의 개념이 언제부터 우리민족의 지리관으로 자리잡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 러나 어느 날 하루아침에 나타난 것은 아닐 것이다. 사료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은 조선 초부터 지도상에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지도상에 반영되었을 것이 란 사실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단지 사료가 없어 고증이 안될 뿐이다. 18세기에 이르러 <산경표>에서 체계적으로 정립되었다.
<산경표>는 지리학자인 여암 신경준이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후 19세기에 고산자 김정호는 심혈을 기울여 대동여지도를 제작하였다. 대동여 지도는 정밀함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 제작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도로 인정받고 있 다. 그러나 대동여지도는 김정호 개인의 작품뿐만이 아니라 우리 지리관의 총화라고 할 수 있다. <산경표>는 전국의 산줄기를 1대간(大幹), 1정간(正幹) 그리고 13개의 정맥(正脈)으로 규정 했고 여기서 다시 가지친 기맥(岐脈)을 기록했다. 산줄기의 순서는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백두대간을 중심 산줄기로 하고 여기서 가지친 장백정간과 낙남정맥을 우선하고, 백두대간 의 북쪽으로부터 가지친 차례대로 그 순서를 정했다.

백두대간과 정백정간은 산이름을, 해서나 호남은 지역 이름을, 나머지 11개는 강이름에서 따 와 산줄기의 이름을 정했다. 때문에 이름만으로도 강의 위치와 지역을 파악할 수 있게 했다. 강이름을 따다 이름을 지은 것은 정맥의 정의를 강유역의 경계능선, 즉 분수령으로 해석했 기 때문이다. 또한 강의 위치, 유역의 넓이, 모양을 알아보기 쉽게 하여 강과 그 유역을 파 악하여 지형지세를 쉽게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방법이다. 산이 곧 그 강을 이 루는 물의 산지라는 인식를 비롯하여 산경표는 활용도를 중요시 하여 제작된 지도였다.

1913년 최남선은 조선광문회에서 『산경표』의 중요성을 발견하고 출판한 적이 있었다. 하 지만 일제의 식민지 정책으로 그 가치는 묻혀버렸고 영영 빛을 보지 못할 뻔했다. 그러나 1980년 겨울, 고지도 연구가 이우형씨는 우연히 인사동 고서점에서 "산경표"를 발견했다. 당 시 대동여지도 복간을 준비하던 중 몇가지 의문에 고심했던 이씨에게 "산경표"는 문제를 푸 는 열쇠가 되었다. 그때부터 이우형씨는 백두대간을 알리기 위해 많는 노력을 하였다. 그 결실을 거두어 백두대간은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온 산맥은 1903년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가 발표한 '조선의 산악론'에 기초를 두고 일본인 지리학자 야스 쇼에이가 재 집필한 '한국지리'라는 교과서에서 기인된 것이다. 일제는 조선에 대한 본격적인 자원 찬탈을 시도하기 앞서 고토분치로로 하여금 1900년부터 1902년까지 우리나라 지질을 탐사토록 한 결과 산맥이 등장하였다. 산맥은 백두산을 매개로 일체가 되는 우리의 민족의 구심점을 없애고 백두대간을 훼절시켜 민족정기를 말살하려는 의도에서 도입되었다.
백두대간을 마천령산맥, 함경산맥, 태백산맥, 소백산맥으로 나누었고, 그렇게 나눈 산맥에 잔 가지를 붙여 백두대간의 본래 모습을 알지 못하게 했다. 또한 낭림산맥을 강조 태배산맥-낭 림산맥의 선을 나라지형의 중심축으로 부각시켰다. 태백, 소백 등 다른 산맥은 모두 산이름 이 들었갔으나 백두산이 있는 마천령 산맥은 고개이름인 마천령을 따서 마천령산맥이라고 지명하였다. 또한 가장 짧은 산맥인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백두산 최고봉을 일왕의 이름인 대정으로 정하여 대정봉이라고 바꿔 놓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고토가 우리나라 땅을 조사한 기간은 1900년 및 1902년 두 차례에 걸친 14개월 동안이었다. 어떻게 기술수준도 미약했던 100전에 한 나라의 지질구조를 단지 14개월이라는 기간동안 완전하게 조사하는 일이 가능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1903년에 발표된 고토의 지질학 적연구성과는 우리나라 지리학의 기초로 자리잡아 지리교과서에 들어앉게 되었다. 고토는 땅속의 맥줄기를 산맥의 기본개념으로 하였다. 지질구조선 즉, 암석의 기하학적인 형 (形), 이것들의 삼차원적 배치의 층층을 기본선으로 하였다. 그러다보니 땅위의 산줄기들의 흐름은 무시되고 땅속의 모양새만 따지다보니 산맥줄기가 강이나 내를 건너뛰고, 능선과 능선을 넘나들고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런 현실임에도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손으로 이 땅을 조사해 볼 생각조 차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제의 침략야욕이 만들어낸 지리개념이 현재에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일제 식민지 치하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해방 후 50년이 넘도록 우리 지형에 맞지도 않는 산맥개념을 쓰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장백정간(長白正幹)
북쪽으로 두만강, 남쪽으로 어랑천·수성천의 분수령. 백두대간의 원산 설령봉에서 시작된 다. 만탑봉(2,205m), 괘상봉(2,136m), 궤상봉(2,541m), 등을 지나 함경북도 내륙을 서북향으 로 관통하는 산줄기. 두만강 하구 서수라곶에서 끝을 맺는다.

낙남정맥(洛南正脈)
북 낙동강이 흐르는 낙남정맥은 남부해안지방의 분계선으로 생활문화와 식생, 특이한 기후 구를 형성시키는 중요한 산줄기.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하여 낙동강 하구 분산(盆山)에서 끝난다. 옥산(614m), 무량산(575m), 여항상(744m), 무학산(763m) 등이 속한다.

청북정맥(淸北正脈)
평안북도 내륙을 관통하며 압록강의 남쪽을0 이룬다. 웅어수산에서 시작하여 신의주 남쪽 압록강 하구의 미곶산에서 끝난다. 대암산(1,566m), 삼봉산(1,585m), 등이 속한다.

청남정맥(淸南正脈)
웅어수산에서 시작하여 청천강의 남쪽 유역과 대동강의 북쪽 유역을 경계하는 분수령. 묘향 산(1,365m), 용문산(1,180m), 서래봉(451m), 강룡산(446m), 광동산(396m)을 지나 용강의 남 포에서 대동강 하구 광량진에서 끝난다.

해서정맥(海西正脈)
백두대간 두류산에서 시작하여 서해 장산곶에서 끝난다. 우리나라 북부와 중부지방의 문화 를 경계하는 분수령이다. 화개산(1,041m), 대각산(1,277m), 설봉산(600m)등이 해서정맥에 속한다.

임진북예성남정맥(臨津北禮成南正脈)


북으로 임진강, 남으로 예성강의 분수령. 황해도의 오른쪽 울타리를 이룬다. 해서정맥의 화 개산에서 시작하여 임진강과 한강의 합수점, 즉 개성의 남산인 진봉산(310m)이다. 학봉산 (664m), 수룡산(717m), 천마산(762m) 등이 속한다.

한북정맥(漢北正脈)


한북정맥은 북으로 임진강 남으로 한강의 분수령. 백봉에서 시작한 백암산(1,110m), 법수령 을 지나 철책 넘어 대성산으로 이어진다. 교하의 장명산(102m)에서 끝난다.

낙동정맥(洛東正脈)

낙동강의 동쪽을 따르는 산줄기로 매봉산에서 시작하여 다대포의 몰운대에서 끝난다. 동해 안 지방의 담장 역할을 한다. 백병산(1,259m), 통고산(1,067m), 백암산(1,004m), 주왕산 (720m), 단석산(829m), 가지산(1,240m) 신불산(1,209m) 등이 속한다.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


한강과 금강을 나누는 분수령으로 속리산에서 시작하여 칠현산에서 끝난다. 도산(547m), 상 당산성, 좌구산(657m), 보현산(481m)등이 한남금북정맥을 이룬다.

한남정맥(漢南正脈)
한강 유역과 경기 서해안 지역을 분계령. 한남금북정맥의 칠현산 북쪽 2킬로미터 지점에 위 치한 칠장산(492m)에서 시작 강화도 앞 문수산성에서 끝맺는다. 백운산, 성륜산, 광교산 등 이 속한다.

금북정맥(錦北正脈)
남으로 금강이 흐른다. 한남정맥에서 갈라져 나와 칠현산(516m), 안성 서운산, 천안 흑성산 (519m), 아산 광덕산(699m), 청양 일월산(560m), 예산 수덕산(495m)을 지난다. 태안반도 끝 안흥진에서 끝을 맺는다.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이다. 장수 영취산(1,076m)에서 시작하여 진안부귀산(806m)까지 이 어진다. 장안산(1,237m) 수분현(530m) 팔공산(1,151m), 임실 성수산(1,059m), 진안 마이산 (667m), 등이 속한다.

금남정맥(錦南正脈)
금강의 남쪽 울타리. 그러나 온전한 울타리를 이루지는 못한다. 애매한 지점(565m)에서 출 발하여 부소산 조룡대에서 끝난다. 대둔산(878m), 계룡산(828m), 운장산(1,126m), 등이 속한다.

호남정맥(湖南正脈)
정맥의 동쪽은 섬진강, 서쪽은 만경강, 동진강, 영산강, 탐진강이다. 낙남정맥과 함께 우리나 라 남부해안문화권을 구획하는 경계선. 금남호남정맥에서 갈래친 후 백운산에서 끝난다. 남 도의 큰 산을 모두 끌어앉는다. 만덕산(762m), 내장산(763m), 추월산(729m), 무등산(1,187m), 제암산(779m), 조계산(884m) 등이 속한다.



산이름

높이

산이름

높이

산이름

높이

산이름

높이

지리천왕봉

1,915.5m

용문산

710m

황장산

1,077.3m

상월산

970.3m

노고단

1,507m

국수봉

790m

도솔봉

1,312.2m

석병산

1,055.3m

만복대

1,433m

백학산

615m

제2연화봉

1,357m

석두봉

991m

수정봉

804.7m

장자봉

380m

비로봉

1,439.5m

화란봉

1,069.1m

고남산

846.4m

봉황산

740.8m

국망봉

1,420.8m

고루포기산

1,238.3m

봉화산

919.8m

형제봉

803.3m

선달산

1,236m

선자령

1,157m

백운산

1,278.6m

속리천황봉

1,057.7m

옥돌봉

1,241.2m

소황병산

1,338m

영취산

1,075.6m

문장대

1,015m

구룡산

1,344m

노인봉

1,328.1m

장수덕유산

1,500m

청화산

984m

태백산

1,566.7m

동대산

1,433.5m

무룡산

1,491.9m

조항산

951.2m

함백산

1,572.9m

응복산

1,359.6m

백암봉

1,480m

대야산

930.7m

금대봉

1,418.1m

갈전곡봉

1,204m

삼봉산

1,254m

장성봉

915.3m

매봉산

1,303.1m

점봉산

1,224.4m

대덕산

1,290m

백화산

1,063m

덕항산

1,070.7m

대청봉

1,707.9m

삼도봉

1,176m

조항산

1,025m

두타산

1,352.7m

마등령

1,326.8m

황학산

1,111.4m

마역봉

927m

청옥산

1,403m

신선봉

1,204m

눌의산

743.3m

포암산

961.7m

고적대

1,353.9m

마산

1,051.9m



산 행 코 스

km

도상

1:5만

1

중산리-천왕봉-장터목산장--덕평봉(선비샘)-벽소령

29

15.5

운봉,산청

2

마천(삼정리)-벽소령-연하천산장-화개재-노고단-성삼재

31

15.5

운봉

3

성삼재-만복대-정령치-고리봉-주촌마을

15.5

10.8

운봉,남원

4

주촌(가재마을)-수정봉-여원재-고남산-매요리

20

15.5

운봉, 남원

5

매요리-사치재-시리봉-봉화산-임도-구상리

17.5

12.8

운봉,함양

6

구상리(송리)-월경산-중재-백운산-무령고개

17

13.8

함양

7

주촌(궐촌)-무령고개-영취산-깃대봉-육십령

14

11

함양,무주

8

육십령-남덕유산-삿갓재-무룡산-동엽령

24

15.8

무주

9

통안-동엽령-백암봉-대봉-신풍령

17

12.4

무주

10

신풍령-삼봉산-소사재-대덕산-덕산령

18

13

무주,무풍

11

덕산령-부항령-삼도봉-석교산-질매재

30

22.5

무풍,영동

12

질매재-황악산-여시골산-궤방령-가성-눌의-추풍령

30

20.8

영동, 김천

13

추풍령-묘함산-작점고개-용문산-국수봉-큰재

20

17.8

관기,상주,영동,김천

14

큰재-회룡재-개텃재-윗왕실-백학산-소정재-지기재

22

17.6

관기,상주

15

지기재-금은봉-신의터-장자봉-화령재

19

15.2

관기,상주

16

화령재-봉황산-비재-형제봉-피앗재

18

12.8

속리,관기

17

피앗재-천황봉-비로봉-문장대-작은눌재-눌재

24

13.6

속리,관기

18

눌재-청화산-조항산-고모치-대하산-불란치재

28

12.8

속리

19

불란치재-장성봉-은치재

18

10

속리,점촌

20

은치재-희양산-이만봉-백화산-이화령

20

18.3

점촌,충주,속리,덕산

21

이화령-조령산-조령3관문-마폐봉-부봉-하늘재

22

16

점촌,덕산

22

하늘재-포암산-대미산-차갓재

20

17

덕산,단양

23

차갓재-황장봉산-벌재재-저수재

21

13

덕산,단양

24

저수재-싸리재-묘적봉-도솔봉-죽령

23

18

단양

25

죽령-연화봉-비로봉-국망봉-연화동갈림길-고치령

30

22.3

영주,영월,예미,단양

26

고치령-마구령-늦은목이-선달산-박달령

26

18.5

예미,태백,영주,춘양

27

박달령-옥돌봉-도래기재-구룡산-실두재

20

14

태백,예미

28

실두재-문수봉 갈림길-태백산-화방재

22

15.3

태백

29

화방재-만향재-함백산-싸리재-금대봉-매봉산-피재

24

19.5

태백

30

피재-한의령-부시령-덕항산-광동이주단지-큰재-댓재

30

23.5

임계,삼척,태백,장성

31

댓재-두타산-청옥산-고적대-이기령

22

17.3

임계,삼척

32

이기령-상월산-백복령-자병산-군대

18

12.5

구정,묵호,임계,삼척

33

군대-생계령-석병산-두리봉-삽달령

20

15.5

구정

34

삽달령-화란봉-닭목재-맹덕-고루포기산-능경봉-대관령

31

25.5

구정,도암

35

대관령-선자령-곤신봉-매봉-소황병산-노인봉-진고개

24

22

구정,도암,연곡,강릉

36

진고개-동대산-두루봉-만월봉-응복산-약수산-구룡령

28

20.8

연곡

37

구룡령-갈전곡봉-연내봉-조침령

24

18.5

연곡,현리,설악,속초

38

조침령-북암령-단목령-점봉산-망대암산-한계령

25

21

설악,속초

39

한계령-대청봉-소청봉-희운각-무너미고개

24

9

설악,속초

40

무너미고개-공룡능선-마등령

24

5

설악,속초

41

마등령-저항령-황철봉-미시령

22

7.5

설악,속초

42

미시령-신선상봉-신선봉-대간령-마산-스키장-진부령

17

설악,간성,속초

상기의 표는 최고 11시간 최저 6시간의 거리임.

실제거리 총 936km



1.종주양식
대학산악부-일반산악회-단독-구간-안내종주의 형식으로 변화했다. 1988년 7월 2일부터 9일 까지 한국대학산악연맹은 백두대간을 15개 구간으로 나누고 49명이 동시다발로 종주에 나서 대간의 개념을 전국의 대학산악부로 확산했다. 이에 따라 대학산악부별로 지원대를 둔 종주 형식을 적극화하면서 백두대간종주에 불이 붙었다. 91년부터는 일반산악회로 종주운동이 옮아갔다. 하지만 생업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들이 종 주에 필요한 시간을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휴직을 하거나 직장을 그만두고 대간길 을 타는 경우도 생겨났다. 1994년부터는 구간종주방식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생업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주말시간을 이용하면 비록 기간은 길어지지만 완주의 기쁨을 맛볼수 있었기 때 문이다. 1995년부터는 안내산악회의 가이드종주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안내종주의 성행으로 개인 적으로 종주가 어려운 산행인들에게까지 백두대간길을 밟아볼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됐음 은 물론이다.

2.종주의 목적
일제에 의해 왜곡된 우리 산줄기 개념을 바로 세우고자 종주에 나섰다고 말하는 종주인들이 많았다. 이들은 또 북쪽의 대간길을 답사할수 있기를 바란다며 통일의 염원을 밝히기도 했 다. 이밖에 장기등반을 통한 등반능력 향상과 해외원정을 위한 훈련의 목적으로 대간종주에 나 선 산악인도 있었고 모험심의 발로나 개인적인 고민을 정리하기 위해 종주에 오른 사람들도 있었다.

3.종주기간
일반적으로 종주중 여섯차례의 지원을 받는다고 가정할 때 40일∼55일 정도 걸린 것으로 나 타났다. 동계종주는 60일∼70일로 나타났는데 적설량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났다. 구간종주의 경우 산행 횟수는 40∼60회, 종주에 걸린 기간은 1년∼3년정도다. 종주인의 사정과 방식에 따라 30일만에 마칠수도 있고 10년에 걸쳐 조금씩 해나갈수도 있는 것이 대간종주의 특징이다.

4.종주와 계절
뜨거운 태양이 등반의욕을 잃게 하고, 우거진 숲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만들며, 해충 과 뱀의 공격까지 감수해야하는 여름종주가 가장 힘들다. 봄과 가을이 종주하기 가장 편한 계절로 꼽혔다. 다만 이들 계절에는 물준비를 특히 신경써 야 한다. 겨울은 폭설과 추운날씨가 등반을 어렵게 하지만 여름보다는 종주하기 수월하다. 설산을 오 르면서 등반의 성취감을 느낄수 있고 숲이 우거지지 않아 넓고 먼 시야가 확보되기 때문이 다. 이같은 분석과는 다르게 실제 종주팀은 여름에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여름 21팀, 겨울 13팀, 봄 10팀, 가을 2팀) 긴 방학기간을 이용한 대학생종주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5.지원장소
대표적인 지원장소는 육십령, 추풍령, 이화령, 죽령, 화방재, 피재, 백봉령, 삽당령, 대관령, 진고개, 구룡령, 한계령 등이다. 교통의 편리성 때문에 이들 고개가 주요한 지원장소가 된 것으로 보인다.

6.위험구간
육십령에서 장수덕유 사이, 추풍령휴게소 지나 384봉, 속리산 문장대에서 눌재, 대야산에서 불란치재, 은티재에서 희양산, 이화령에서 조령3관문, 차갓재에서 황정산 정상, 망대암산에서 한계령, 마등령에서 황철봉사이를 종주자들은 위험한 구간으로 꼽았다.

7.난독도구간
정령치-주촌마을-88고속도로 지리산휴게소, 황학산에서 궤방령, 추풍령에서 화령재, 속리산 문장대에서 눌재, 피재에서 덕항산, 삽당령에서 닭목재구간 등이다.

8.사고사례
동계 종주중 오대산 두루봉에서 텐트 안에 버너를 켜놓은 채 자다가 질식사한 사고를 비롯 해 안내종주에 나섰다가 탈진해 혼수상태에 빠진 경우(인공호흡으로 소생)가 있었다. 암릉에 서 추락하거나 독사에 물린 사고 등도 보고됐다.

9.식량준비
종주자들은 입맛에 맛고 가벼우며 영양가가 높은 것, 변질되지 않으며 포장이 쉬운 음식물 을 식량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추천한다. 간식으로 사탕, 땅콩, 초코파이, 건바나나, 건포도가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매 끼니 식사를 개별포장해 더 먹고싶은 충동을 억제한 경우도 있었고, 빵만으로 연명하다 구역질이 나 한 끼를 떡라면으로 바꾼 경우도 보고됐다. 반찬으로 대부분 젖갈류를 준비했다. 김치는 무게가 많이 나가기 때문이다. 산에서 캔 더덕 으로 간식을 해결하거나 나무아래에 사각플라이를 쳐놓고 이슬을 털어서 식수로 사용한 현 지조달형도 있었다. 설탕과 식초를 물에 타서 마시면 갈증해소에 좋고 건강에도 좋다는 비법소개도 있었다


* 백두대간의 산봉치재

천왕봉-제석봉-연하봉-삼신봉-촛대봉-영신봉-칠선봉-덕평봉-벽소령-형제봉-명선봉-토끼봉-화개재-

삼도봉-반야봉-임걸령-돼지령-노고단-코재-종석대-성삼재-작은고리봉-묘봉치-만복대-정령치-고리봉-

수정봉-여원재-고남산-통안재-유치재-유치-사치재-복성이재-치재-다리재-봉화산-광대치-월경산-중재-

중고개재-백운산-영취산-덕운봉-민령-깃대봉-육십령-할미봉-남덕유서봉-남덕유산-월성치-삿갓봉-

삿갓골재-무룡산-가림봉-동업령-백암봉-귀봉-횡경재-지봉-월음령-대 봉-갈미봉-빼재-수정봉-된새미재-

호절골재-삼봉산-소사고개-삼도봉-대덕산-덕산재-부항령-삼도봉-밀목재-화주봉-우두령-바람재-형제봉-

황악산-백운봉-운수봉-괘방령-가성산-장군봉-눌의산-추풍령-금산-사기점고개-난함산-작점고개-갈현-

용문산-국수봉-큰재-회룡재-개터재-윗왕실-백학산-개머리재-지기재-신의터재-윤지미산-화령재-봉황산-

못재-형제봉-피앗재-속리산천황봉-비로봉-입석대-신선대-문수봉-문장대-밤티재-늘재-청화산-갓바위재-

조항산-고모령-밀재-대야산-촛대재-촛대봉-불란치재-곰넘이봉-버리미기재-장성봉-악휘봉-은티재-

주치봉-구왕봉-지름티재-희양산-시루봉-이만봉-곰틀봉-사다리재-평전치-백화산-황학산-이화령-조령산-

조령-마폐봉-부봉-평천재-탄항산(월항삼봉)-하늘재-포암산-관음재-부리기재-대미산-새목재-차갓재-

작은차갓재-황장산-감투봉-황장재-폐백이재-벌재-문봉재-옥녀봉-저수재-촛대봉-시루봉-배재-싸리재-

뱀재-솔봉-묘적령-묘적봉-도솔봉-삼형제봉-죽령-제2연화봉-연화봉-제1연화봉-소백산비로봉-국망봉-

상월봉-늦은맥이-마당치-고치령-미내치-마구령-갈곶산-늦은목이-선달산-박달령-옥돌봉-도래기재-

우구치임도-금정임도-구룡산-곰넘이재-신선봉-깃대배기봉-부소봉-태백산- 화방재-수리봉-창옥봉-만항재-

함백산-중함백-은대봉-싸리재(두문동재)-금대봉-비단봉-매봉산-피재-건의령-푯대봉-구부시령-덕항산-

자암재-큰재-황장산-댓재-목통령-두타산-박달령-청옥산- 연칠성령-만군대-고적대-갈미봉-이기령-상월산-

원방재-백봉령-자병산-생계령-석병산-두리봉-삽당령-석두봉-화란봉-닭목재-고루포기산-횡계현-능경봉-

대관령-선자령-곤신봉-매봉-소황병산-노인봉-진고개-동대산-두로봉-신배령-만월봉-응복산-마늘봉-

약수산-구룡령-갈전곡봉-조침령-신조침령-북암령-단목령-점봉산-망대암산-필례령-한계령-끝청-중청봉-

청봉-소청봉-무너미고개-천화대-나한봉-마등령-저항령-황철봉-미시령-상봉-화암재-신선봉-대간령-

마산-진부령

(색인은 정맥 분기점)

* 백두대간 구간별 거리

천왕봉-1.6-장터목산장-0.8-연하봉-1.86촛대봉-0.6-세석산장-2.0-칠선봉-1.5-선비샘-2.55-

벽소령-1.3-형제봉-2.05-연하천-2.94-토끼봉-1.25-화개재-0.75-삼도봉-2.15-임걸령-1.05-

돼지평전-2.23-노고단-3.5-성삼재-5.2-만복대-2.2-정령치-0.9-고리봉-3.4-고촌리-2.15-

주촌리-6.75-여원재-5.47-고남산-5.0-매요리-3.3-사치재-2.93-새맥이재-1.4-시리봉-3.38-

복성이재-4.11-봉화산-7.73-중재-1.8-중고개재-2.55-백운산-3.45-영취산-4.6-977봉-3.6-

깃대봉-3.07-육십령-2.28-할미봉-2.95-헬기장-1.85-장수덕유산-1.3-남덕유산-4.15-

삿갓골재-2.68-무룡산-4.1-동엽령-2.2-백암봉-2.75-귀봉-0.34-횡경재-1.15-싸리덤재-0.51-

지봉-1.2-달음재-1.11-대봉-3.96-빼재-4.35-삼봉산-3.1-소사고개-3.25-초점산-1.45-대덕산-3.05-

덕산재-5.3-부항령-8.2-삼도봉-0.72-심미걸재-6.78-화주봉-3.55-우두령-4.45-바람재-2.85-

황악산-5.55-궤방령-4.25-가성산-3.03-눌의산-3.61-추풍령-2.65-502봉-4.19-묘함산 갈림길-2.05-

작점고개-5.13-용문산-2.47-국수봉-3.18-큰재-5.65-개터재-6.87-백학산-4.7-개머리재-2.7-

지기재-4.55-신의터재-4.27-무지개산갈림길-4.41-윤지미산-1.87-화령재-3.26-산불감시초소-1.45-

봉황산-3.85-비재-4.27-형재봉-1.56-피앗재-5.66-속리산천황봉-2.58-신선대-1.17-문장대-4.45-

밤티재-3.3-늘재-2.49-청화산-3.7-갓바위재-1.15-조항산-4.35-밀재-1.25-대야산-4.55-

버리미기재-1.97-장성봉-5.35-악희봉-2.16-은치재-2.75-지름티재-1.38-희양산-2.28-

배너미평전-2.26-이만봉-1.1-사다리재-2.46-평전치-1.45-백화산-1.85-황학산-3.9-조봉-1.53-

이화령-2.12-조령샘-0.75-조령산-5.1-깃대봉-1.0-조령3관문-0.91-마폐봉-3.41-동암문-1.5-

주흘산갈림길-1.75-월항삼봉-1.82-하늘재-1.35-포암산-2.82-만수봉갈림길-7.6-버리기재-1.35-

대미산-5.9-차갓재-2.6-황장산-0.92-황장재-4.56-벌재-6.06-저수령-3.98-배재-1.0-싸리재-2.6-
뱀재
-4.05-묘적령-1.05-묘적봉-1.7-도솔봉-5.8-죽령-6.25-천문대-4.43-비로봉-3.08-국망봉8.27-

마당치-2.8-고치령-7.6-마구령-4.9-갈곶산-1.03-늦은목이-1.77-선달산-5.1-박달령-3.0-

옥돌봉-2.6-도래기재-5.46-구룡산-4.96-신선봉-5.35-깃대배기봉-3.93-태백산-4.5-화방재-3.45-

만항재-2.85-함백산-5.4-싸리재-1.2-금대봉-6.0-매봉-2.55-피재-6.4-건의령-8.0-덕항산-5.5-

광동댐 이주단지-4.7-황장산-1.5-댓재-6.3-두타산-3.35-청옥산-2.2-고적대-6.25-이기령-1.6-

상월산-9.4-백복령-3.28-헬기장-8.92-석병산-6.3-삽당령-6.8-석두동-5.4-화란봉-1.95-

닭목재-11.15-능경봉-1.8-대관령-5.65-선자령-3.25-곤신봉-4.25-매봉-5.1-소황병산-3.7-

노인봉-3.85-진고개-1.6-동대산-6.95-두로봉-8.15-응복산-6.8-구룡령-4.2-갈전곡봉-12.4-

쇠나드리-4.65-조침령-7.25-북암령-3.1-단목령-4.5-오색삼거리-2.0-점봉산-1.4-망대암산-5.65-

한계령-2.33-서북능삼거리-4.05-끝청-1.75-대청봉-1.9-회운각-3.1-1275봉-2.1-마등령-4.35-

황철봉-1.65-1318봉-2.5-미시령-3.45-신선봉-2.85-대간령-3.55-마산-5.75-진부령

백두대간 실측거리 : 734.65Km

※ 50m 줄자로 연인원 379명의 포항셀파 산악회에서실측한 정보

* 백두대간 산경표




백두산(白頭山) 연지봉(檎脂峰) 허항령(虛項嶺) 보다회산(寶多會山)사이봉(沙伊峰)

완항령(緩項嶺) 어은령(漁隱嶺) 원산(圓山:장백정간의 분기점) 마등령(馬騰嶺)

괘산령(掛山嶺) 황토령(黃土嶺)



황토령(黃土嶺) 천수령(天秀嶺) 조가령(趙哥嶺) 후치령(厚致嶺) 향령(香嶺)

태백산(太白山) 부전령(赴戰嶺) 대백역산(大白亦山) 황초령(黃草嶺)

사향산(麝香山) 설한령(雪寒嶺)



설한령(雪寒嶺) 낭림산(浪林山:청북정맥, 청남정맥의 분기점) 상검산(上劍山)

마유산(馬踰山) 횡천령(橫天嶺) 두무산(頭蕪山) 애전산(艾田山) 철옹산(鐵瓮山)

오강산(吳江山) 운령(雲嶺) 무라발산(无羅鉢山)





무라발산(无羅鉢山) 거차산(巨次山) 토령(土嶺) 장좌령(莊佐嶺) 대아치(大峨峙)

죽전령(竹田嶺) 기린령(麒麟嶺) 재령산(載靈山) 화여산(花餘山)

두류산(頭流山:'무명 지맥'의 분기점. 무명지맥은 해서정맥, 임진북예성남정맥으로 연결된다.)

노동현(蘆洞峴)



노동현(蘆洞峴) 반룡산(盤龍山) 마은산(馬恩山) 노인치(老人峙) 박달령(朴達嶺)

백학산(白鶴山) 설운령(洩雲嶺) 설탄령(雪呑嶺) 분수령(分水嶺:한북정맥의 분기점)

청하령(靑霞嶺) 추포령(楸浦嶺)




추포령(楸浦嶺) 풍류산(風流山) 철령(鐵嶺) 판기령(板機嶺) 기죽령(騎竹嶺)

저유령(猪踰嶺) 추지령(楸池嶺) 판막령(板幕嶺) 쇄령(朝嶺) 온정령(溫井嶺) 금강산(金剛山)




금강산(金剛山) 회전령(檜田嶺) 진부령(珍富嶺) 마기라산(磨耆羅山)

흘리령(屹里嶺) 미시파령(彌時坡嶺) 설악(雪岳) 오색령(五色嶺) 연수령(連水嶺)

조침령(曹枕嶺) 구룡령(九龍嶺)




구룡령(九龍嶺) 오대산(五臺山) 대관령(大關嶺) 삽당령(揷當嶺) 백복령(百福嶺)

두타산(頭陀山) 청옥산(靑玉山) 죽현(竹峴) 건의령(建儀嶺) 대박산(大朴山)

태백산(太白山:낙동정맥의 분기점)




태백산(太白山) 수다산(水多山) 백병산(白屛山) 마아산(馬兒山) 곶적산(串赤山)

소백산(小白山) 죽령(竹嶺) 도솔산(兜率山) 작성산(鵲城山) 대미산(黛眉山)

계립산(鷄立山)




계립산(鷄立山)조령(鳥嶺) 이화현(伊火峴) 희양산(曦陽山) 주현(周峴)

대야산(大耶山) 불일산(佛日山) 화산(華山) 속리산(俗離山:한남금북정맥의 분기점)

구봉산(九峰山) 봉황산(鳳凰山)




봉황산(鳳凰山) 웅현(熊峴) 웅이산(熊耳山) 고산(高山) 흑운산(黑雲山)

추풍령(秋風嶺) 계방산(桂榜山) 황악산(黃岳山) 삼성산(三聖山) 우두산(牛頭山)

삼도봉(三道峰)




삼도봉(三道峰) 대덕산(大德山) 덕유산(德裕山) 백암봉(白巖峰) 봉황산(鳳凰山)

육십치(六十峙) 장안치(長安峙:금남호남정맥의 분기점) 본월치(本月峙)

백운산(白雲山) 기치(箕峙) 유치(柳峙)



유치(柳峙) 여원치(女院峙) 지리산(智異山: 낙남정맥의 분기점

* 백두대간 구간지도








































































'자료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상체질과 등산건강  (2) 2008.07.03
백두대간 길잡이  (0) 2008.04.30
백두대간의 산,봉,치,재  (0) 2008.04.29
산경도 및 1대간 9정맥  (0) 2008.04.21
산경표에 나타난 우리산줄기  (0) 2008.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