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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산행기

가산산성[架山山城] 산행

* 진달래가 만개한 가산산성 북쪽. 가산 정상의 풍경

1. 산 행 지 :팔공산 가산(902m)-가산산성/ 대구광역시,경북 칠곡군

2. 산행일자 : 2009년 03월 19일(일) / 맑음,개스

3. 산 행 자 : 홀로

4. 산행경로 : 진남문-해원정사-동문-중문-가산바위-가산정상-할미,할비바위-치키봉-진남문(이정표 기준10.9km)

5. 산행시간 :3시간 10분(휴식시간 포함)

6. 산행지도

* 가산산성 주변도


7. 산 행 기


작년 5월이후 다시찿은 가산산성의 진남문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가산성은 만 길이나 되는 산 위에 있으며 남북으로 통하는 큰길을 가로질러서

큰 요충지라 할 수 있다"고 되에있는 곳이다

진남문에서 본 해원정사


녹음이 우거진 해원정사 경내를 둘러보고....



연한 녹색으로 변하는 해원정사



해원정사 대웅전



동문-남문-가산바위-가산-치키봉으로 산행경로로 생각하고 직진하여 우측길로 내려오면 된다


동문가는길 봄의 풍경



계곡의 너덜지대



임도를 버리고 곧장 올라오니 쉼터가 있다



가산산성 동문의 뒷모습


가산산성 동문의 모습

당초엔 이 성문 서쪽 구간만 성안으로 편입되면서 이 문이 '동문'으로 칭해졌다. 그러다 그 동쪽 구간으로도 성의 영역이

확장됨으로써 '동문'은 가산성 안과 밖을 연결하는 통로가 아니라 성 안의 중간문으로 변했던 듯 하다.


중문 가는길의 풍경



가산산성 중문의 뒷모습



가산산성 중문



소나무 숲길을 따라 가산바위로....



가산의 명물격인 가산바위



가산바위의 전경과 황학산도 보이고...


가산바위에서 본 가팔환초의 들머리인 계정사와 두무지가 보인다


가산바위에서 내려와 성곽길을 따라 중문으로....



중문을 지나 가산 정상가는 길에 습지인 연못을 지나



진달래가 만개한 가산에 오른다



가산 정상의 표지목



가산에서 바라본 팔공산의 정상보고 유선대와 용바위로......



팔공산의 북쪽방향을 조망할 수 있는 유선대

동문에서나 가산에서도 용바위,유선대 이정목이 있으나 정작 가까이에 가보니 어느곳이 유선대와 용바위인지

표시가 불분명하여 조금은 아쉬운 생각이 든다



유선대에서 바라본 용바위의 풍경

깎아지른 절벽들과 돌봉우리들. 그 절경지는 간혹 '용바위' 혹은 '삼칭이"라는 말로 지칭되는 듯 했다.

'용바위' 역시 특정 절벽 줄기 하나만을 가리킬 뿐 아니라 전래명칭도 아닌 듯 했다. 인근에서는 '유선대'라는 것이 있다는

안내판도 보였으나, 현지인들은 그런 명칭을 들은 적 없다고 했다. 그게 어느 것을 가리키는지 설명해 줄 외지인도

만날 수 없었고, 안내판을 붙였던 공원관리사무소 역시 모른다고 했다.


유선대에서 본 산사면의 경치와 북창마을의 전경



유선대에서 내려다 본 암릉의 경치와 북창마을



유선대에서 본 팔공산의 능선



다시 가산정상을 지나 성곽을 따라 치키봉으로....


치키봉 가는길에 할미,할비바위



할미,할비바위



작은 암봉을 지나서 치키봉으로....



할미,할비바위을 뒤로하고 치키봉으로....



전망바위를 지나 조금 진행하니 치키봉이다, 좌측으로 돌아 내려가면 한티재 가는길이고 우측으로 내려서면 진남문으로 간다



정자 쉼터의 고목과 대나무 숲을 지나 내려오면...



관리초소가 있는 가산산성 입구에 다다른다


가산산성[]은

경북 칠곡군 가산면 가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산성으로서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을 겪은 후 잇따른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서 세워진 성이다.
성은 내성·중성·외성을 각각 다른 시기에 쌓았고, 성 안에는 별장을 두어 항상 수호케 하였다.
하양, 신령, 의흥, 의성, 군위의 군영과 군량이 이 성에 속하며 칠곡도호부도 이 산성내에 있었다. 내성은 인조 18년(1640)에

관찰사 이명웅의 건의로 쌓았으며, 칠곡도호부가 이 안에 있었다. 중성은 영조 17년(1741)에 관찰사 정익하가 왕명을 받아

쌓은 것으로 방어를 위한 군사적 목적이 크다. 중요시설은 내성 안에 있으며, 중성에는 4개 고을의 창고가 있어 비축미를

보관해서 유사시에 사용하게 하였다. 외성은 숙종 26년(1700)에 왕명에 의해서 쌓았다.
성은 외성 남문으로 들어가게 되고, 성의 주변에는 송림사를 비롯한 신라때 절터가 많이 남아있다. 1960년의 집중 폭우로

문 윗쪽이 무지개처럼 굽은 홍예문이 파손되고 성벽의 일부가 없어졌으나 그 밖에는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가산산성은 험한 자연지세를 이용한 조선 후기의 축성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산성이다.

가산산성은 전체적으로는 비스듬히 누운 호리병 모양을 하고 있다. 밑은 불룩하고 주둥이 부분은 아주 좁은 형태.

평평한 땅을 골라 성내로 넣고, 경사 심한 경계선을 골라 거기에 성벽을 쌓으려 했던 결과일 터. 대체로 산의 주능선을

따라 축조하되, 외성(치키봉에서 가산 정상까지) 구간에서는 남사면의 땅을 성내로 넣고, 내성(정상부 서편) 구간에서는

북사면 땅을 성내로 넣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고 보면 될 듯 하다. 그 때문에 주능선은 산성의 북쪽 성벽 자리가 되다가

남쪽 성벽이 되다가 변덕을 부린다. 치키봉에서 정상까지는 북쪽 경계선, 그 이후는 남쪽 경계선이 되는 것. 주능선의 남북

이동과 궤를 같이 하는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