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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산행기

남원 운봉골 황산산행

* 고려말 이성계가 왜구를 격퇴한 황산대첩지(址)인 황산 정상의 가을경치

1. 산 행 지 :황산(695m) /전북 남원시

2. 산행일자 : 2009년 09월 26일(토) / 맑음

3. 산 행 자 : 아들과 함께

4. 가 는 길 :남대구I.C - 지리산I.C -24번국도(남원방향)- 남원시 운봉읍 국악의 성지(약120km, 1시간 30분 소요)

5. 산행경로 :국악의 성지-박초월묘-왼편 골짜기-서북릉-황산-서릉-황산정-군화동-국악의 성지(도상거리 약4.5km)

6. 산행시간 :2시간 00분(11:30-13:30)

7. 황산 위치도



8. 산 행 기


운봉읍 비전마을에서 바라본 국악의 성지와 황산의 전경

국악의 성지-판소리 동편제의 본고장으로 명인,명창을 기리면서 전통 음악을 전수,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지나....


안내판이나,이정표가 없어 두리번 거리다 보니 국창 박초월의 묘 왼편으로 오른다



등산길도 없는 산사면을 오르고....



고스락에 오르니 백두대간 시리봉,복성이재,봉화산 능선이 조망이 된다



남원 운봉골의 황금들판과 통신탑이 있는 고남산의 경치


백두대간의 마을인 매요마을과 금남호남정맥의 장안산과 팔공산의 능선도 보며....



우측으로는 철쭉으로 유명한 봉화산과 88고속도로가 시원하게 한눈에 들어온다



능선에 오르기 위해 잡목숲을 헤치고....



붉은 단풍과 봉화산의 전경


황산가는길 고스락에서....


산성터



서릉 삼거리의 이정목을 지나 바위사이에 설치한 철계단을 오르면...



억새와 어우러진 황산 정상에 닿는다


황산 정상석의 비문



정상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봉화산과 그 넘어로는 백운산도 조망이 된다



우측 인월방향으로 보니 팔랑재와 상산도 보며...



백두대간 큰고리봉에서 세걸산,바래봉으로 흘러내린 덕두산과 옥계호수도 보며....



남원 운봉들판과 수정봉


88고속도로 지리산휴게소와 시리봉, 우측으로 보이는 봉화산



백두대간 매요마을과 금남호남정맥의 장안산과 장수 팔공산의 능선



황산 정상 억새의 경치를 잠시보며 하산길로....



정상에서 철계단을 내려와 서릉 삼거리 이정목에서 황산정 가는길에큰 암벽을 지나고...



운봉 군화동에 위치한 국궁장인 황산정



가을 들녁의 도로를 따라 국악의 성지로...



다시 돌아온 국악의 성지



국악성지의 가을 경치



국악의 성지 풍경



국악의 성지에서 본 황산의 전경

돌아오는길에 황산대첩비지[]의 대첩비각

운봉읍() 화수리()에 있는 고려 말 이성계()의 황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의 터



황산대첩지의 파비각[]



황산대첩비

고려 말 이성계(태조)가 남해안에 출몰하던 왜구를 황산()에서 격퇴한 전공을 기록한 황산대첩비를 파괴하였는데

파비각에는 그때 파괴된 황산대첩비의 일부 파편들이 보관되어 있다.
일제 감정기에 일본경찰들은 황산대첩비를 비롯한 전국의 일본 관련 전승비와 대첩비 20여 기를 깨부수고,

비석의 비문을 정으로 쪼아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황산대첩비지[]



황산대첩지


어휘각: 이성계가 승리를 기념하여 바위면에 자기의 이름과 장수들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

황산대첩이 있었던 다음해 이성계 장군이 이곳을 찾아와 자기와 함께 싸운 8명의 원수와 4명의 종사관의

이름을 천연 바위에 새긴 것


동편제를 창조한 송홍록의 생가



가왕(歌王)송홍록의 생가


황산은 작고 오밀조밀하며 유래가 있는 산이며 경광이 좋은 산이다

정상은 우뚝솟은 바위산과 깍이지는 벼랑으로 된 노송과 잘 어울려진 산이다

정상에 서면 지리산 북쪽의 산들이 모두 보이며 운봉에서 남원에 이르는 들과 백두대간 능선,금남호남정맥의

능선이 두루 조망되는 산이다

주변에 고려말 이성계의 황산대첩지와 판소리 동편제의 고장에 걸맞게 국악의 성지도 둘러보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황산대첩[荒山大捷]은

1380년(우왕 6) 9월 이성계(李成桂)가 전라도 지리산 근방 황산에서 왜구(倭寇)를 격퇴시킨 싸움이며
1376년 홍산(鴻山)싸움에서 최영(崔瑩)에게 대패한 왜군이 1378년 5월 지리산 방면으로 다시 침입하였고, 1380년 8월에는

진포(鎭浦:錦江入口)에 500여 척의 함선(艦船)을 이끌고 침입, 충청 ·전라 ·경상 3도의 연안지방을 약탈 ·살육하여 그 참상이 극도에 달하였다. 이때, 원수 나세(羅世) ·최무선(崔茂宣) 등이 화통(火) ·화포(火砲)로써 왜선을 격파, 전부 불태워버리자

퇴로를 잃은 왜적은 더욱 발악을 하여 그 피해가 막심하였다.
조정에서는 이를 토벌하기 위하여 이성계를 양광(楊廣) ·전라(全羅) ·경상도순찰사(慶尙都巡察使)로 임명,

이 지방의 방위책임을 맡게 하였다. 적은 함양(咸陽) ·운봉(雲峰) 등의 험지(險地)를 택하여 동서로 횡행하므로, 이성계는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남원(南原)에서 배극렴(裵克廉) 등과 합류, 각 부서를 정비한 다음 운봉을 넘어 황산 북서쪽에

이르렀을 때 적과 충돌하게 되었다. 이때 적은 산을 의지하여 유리한 위치에 있었으므로 이성계는 고전에 빠졌으나,

이를 무릅쓰고 부하 장병을 격려하여 적을 대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