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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산행기

아들과 함께 가산[架山] 산행

* 가산산성() 내성의 가운데 있는데 80평 규모이며 일명 가암()이라고도 불리우는 가산바위의 정상부


1. 산 행 지 :가산(902m)-가산산성-모래재 / 대구광역시,경북 군의군, 칠곡군

2. 산행일자 : 2010년 07월 25일(일) / 맑음

3. 산 행 자 : 아들과 함께

4. 산행경로 : 여릿재-814봉-중문-가산--중문-가산바위-서문-황학지맥 분기봉-모래재-금화관광농원(이정표 기준12.4km)

5. 산행시간 :3시간 50분(13:20~17:10)

6. 산행지도

7. 산 행 기

동쪽 남원천골과 서쪽 두무실을 잇는 여릿재 고갯마루


산행 들머리, 예전에 없었던 가산바위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으며 우측 산길로 접어들어 가산산성으로 오른다


구조목이 중간 중간에 설치되어 있으며 가산산성 성곽까지 16개가 이어져 있다


우거진 숲길과 처음부터 가파른 산길이 이어진다


더운 날씨에 오름길은 계속되고.....


멋진 바위군에서 잠시 쉬어가기도 하고....


편한 능선길이 이어지다가 또다시 경사길이 시작된다


구조목 07-08지점에 오르면 북,동쪽 방향에 조망이 트이기 시작한다


북쪽방향의 814봉의 풍경


남원천골과 도덕산의 전경


대구시가지와 앞산,비슬산의 전경도 보이고....


여릿재에서 한참이나 올라오면 구조목 07-16에서부처 가산산성길이 시작된다

구조목 07-17 부근의 암문(暗門)을 지나.....


가산바위와 서문,모래재 부근까지 뢴쪽으로는 성곽길이다

구조목 07-18 부근에서 가산바위와 중문 갈림길에서 중문으로 간다

가산산성 내성의 중앙을 가로막아 내성의 1/2을 보호하기 위하여 1741년 중성 축조 시에 만들어진 중문

중문에서 팔공지맥길을 따라 진행하면 고산지대에 저수지가 나오고 봄철이면 복수초가 군락을 이루는 작은 언덕을 넘으면..

헬기장을 지나 용바위,유선대,동문의 이정목이 있으면 우측 근거리에 가산 정상이 있다

가산[] 정상에서


우측 밧줄을 타고내려가면 등로 우측에 돌출 전망바위가 있는데 이곳이 용바위인지는?????


아니면 이놈이 용바위???? 몇번씩 와 보아도 표지판이 없으니 영 구분이 안간다

펜스전망대가 있는 유선대


돌출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팔공산의 정상

당겨본 팔공산의 정상부


북창바을의 전경과 멀리 의성 지역의 작은 산군들이 보인다


좌측으로는 유선대와 한듬마을의 전경도 보이고....


다시 중문을 지나 가산바위로.....


조선조 인조17년 외적의 칩입을 막기위해 가산산성을 지키던 장수들이 식수로 사용하였던 장군정이란 샘터

가산바위 입구


가산바위와 가산의 정상


일명 가암()이라고도 불리우는 가산바위

사면이 깎아지른 듯이 우뚝 솟아 있는 바위로,상면에80평 정도의 넓은 평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고승 도선()이

지기()를 잡으려고 바위 위 구멍 안에 쇠로 만든 소와 말의 형상을 묻었는데 조선시대 관찰사 이명웅()이

성을 쌓으면서 없애버렸다는 전설이 전한다.

가산바위에서 바라보니 땅재 옆으로 유학산.황학산,백운산과 금오산도 보인다


다부재(소야고개) 넘어로 황학지맥 줄기인 백운산,황학산의 줄기가 보이고....


가산바위 아랫마을인 '두무실'과 칠곡지역과 낙동강이 조망이 된다

대구시가지,앞산,비슬산과 여릿재에서 시작한 산줄기가 보인다

가가산바위을 내려와 왼쪽으로 가면 이내 장군정 200m푯말이 있는 계정사 갈림길에서 팔공지맥길로 접어든다

서문으로 가는 동안 우측에도 좋은 길이 함께 나란히 가지만 산성길을 따라간다


가산산성의 제일 북쪽 돌출된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원형 그대로 보존된 듯 그 형태가 온전한 서문

황학지맥 분기봉인 852봉에서 모래재 가는길은 급경사의 내리막 길이다

852m봉에서 북쪽으로는 팔공기맥의 '위천지맥'이 출발한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황학지맥'으로 연결돼 가는

산줄기가 이어진다

달걀버섯


V자형 협곡지대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은밀한 곳에 일반 성문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개구부를 내어 출입하는 성문의 일종인 암문(暗門)

급한 내리막길에 만들어져 있는 몇기의 작은 돌탑


잠시 쉬면서....


모래재 인근의 전망바위


전망바위에 오르면 금화계곡과 땅재고개 양편으로황학산(좌)과 유학산(우)이 보인다


팔공지맥 661봉의 능선


가산바위에서 팔공지맥길을 찬참이나 내려와 모래재에 이른다


모래재에서 올려다 본 황학지맥 분기봉인 852봉의 전경


모래재에서 한참이나 내려오면 팔공산 공원안내도와 가산바위,진번더기(금화저수지)의 이정표가 있다

여기서도 가산바위에 오를수가 있는 곳인가 보다


임도길의 라이딩


모래재 임도에서 바라본 금화계곡


모래재 임도에서 바라본 746,730,660봉의 능선


금화계곡의 사방댐


칠곡군 가산면 금화계곡의 토종벌 집단 양봉터가 팔공산의 또 다른 계절 풍광을 일궈내고 있다.

십 수 년 전 뿌리를 내렸다는 이곳에서는 지금 두 농가에서 1천여 통의 토종벌을 기른다고 한다




가산산성은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가산리 산98-1외 11필지에 위치하는 조선시대의 석축산성으로

사적 제216호로 지정되었으며, 주변은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설정되어 있다. 산성은 해발 901.6m의 천험(天險)의

가산골짜기를 이용하였고 내·중·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사대문지와 암문·수구문·건물지 등의 시설이 남아있다.

성(城) 내에는 물이 풍부하여 산성 입보의 시설을 갖추고 있고 내·중·외성은 각기 시대에 따라 따로 축성되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잇따른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 가산 요새에 삼중(三重)으로 축성되었다.

『칠곡 가산산성 지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내성의 총 길이는 5.071㎞, 면적은 587,433㎡이다. 외성의 총 길이는 내성

축조 때 이미 만들어진 동문 좌우 성벽 454m를 제외하고 4.669㎞이며, 면적은 1,509,289㎡이다. 내성을 동서로 가로막아

초축(初築)의 내성 남쪽 1/2을 중성의 공간으로 활용하였는데 중성만의 면적은 359,451㎡이다. 동문과 중문의 좌우 연결

성벽을 포함한 가산산성축성 총 길이는 11.041㎞이며, 동문·중문의 좌우 연결 성벽을 제외하고 내성·외성 모두를 합친

가산산성의 총 둘레는 10.164㎞가 된다. 성안의 총 면적은 2,096,722㎡이다.

동문은 외성 축조 이전까지 내성의 정문이었다. 개구부의 정면은 남동향이며 입면 모양은 윗부분을 둥글게 한

홍예문(虹霓門) 형식으로서, 좌우에 길이 168㎝의 장방형 홍예기석(虹霓基石)을 놓고 거기서부터 정상으로 가면서 원호를

이룬 전형적인 홍예문 양식이다. 개구부의 폭은 275㎝이며, 지대석에서부터 홍예종석(虹霓宗石)까지의 높이는 390㎝이다

동문의 좌우 육축부(陸築部)는 방형에 가깝다. 동측의 것은 붕괴가 심한 편이고, 서측의 육축부 역시 양호한 상태는 아니다.

동문 육축부의 상면에는 문루를 두었던 주초석을 발견할 수 있다.

남문은 외성의 정문인 동시에 내·외성 전체의 정문이다. 개구부는 남서향이며, 1954년의 집중 폭우로 유적의 대부분이

유실되었는데, 이후 1977~1980년에 걸쳐 남문루 및 남문과 암문·수구문·여장 185m를 복원·중수하였다. 남문의 육축부는

방형이나 동문과 같이 전면을 돌출시킨 적대 시설은 찾아볼 수 없다. 남문의 개구부는 동문과 같은 홍예문으로 1단의

홍예기석을 세우고 홍예종석 좌우로는 4매의 홍예석을 두었다. 개구부의 폭은 341㎝, 바닥에서 홍예종석까지의 높이는

330㎝이다. 남문 육축부 상면에는 벽돌을 쌓은 여장을 설치하여 문루를 보호하였고, 그 좌우로는 성돌과 같은 석재를

이용하여 평여장을 시설하였다

북문은 형태가 평거식(平据式)으로 개구부의 규모는 폭 256㎝, 높이 180㎝이며, 천정은 길이 335㎝, 폭 72㎝, 두께 52㎝의

장방형 판상석 8매를 결구(結構)하여 놓았다. 성문벽 외측으로 돌출된 방형의 적대 시설을 갖추고 있어 암문과는

구별이 된다.


서문은 가산산성의 제일 북쪽 돌출된 부분에 위치한다. 서문은 북문과 마찬가지로 평거식 개구부를 하고 있다.

성문의 바깥쪽으로는 본 성벽에서 돌출 되어진 적대 시설이 있으며 성문 안쪽으로는 육축부를 보호한 옹벽이 마련되어 있다.

개구부의 형태는 좌우로 1매의 장대석을 세우고 상면으로는 길이 287㎝, 폭 75㎝, 두께 45㎝, 판상 석재 7매를 결구하여 놓아

천장석을 하고 있다. 개구부의 폭은 260㎝, 높이 180㎝로 북문과 크기가 거의 같다. 서문의 상면에는 원형 주초석이 유존하고

있어 문루를 두었다고 추정된다.

중문은 내성의 중앙을 가로막아 내성의 1/2을 보호하기 위하여 1741년 중성 축조 시에 만들어진 문이다. 1954년 대홍수 때

유실된 남문루·남문·수구문·여장 등을 복원할 때 중문도 같이 복원·중수하였고, 1992년에 2차로 중문만을 다시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개구부의 입면 상태는 홍예식으로 중심점이 홍예기석 상에 걸쳐지는 반원형 홍예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홍예기석은 다석식 기석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홍예기석 좌우로 5매의 홍예석들을 조립하여 놓아 홍예종석에 이르고

있다. 중문의 정면은 동남향이며, 개구부 정면의 폭은 220㎝, 바닥에서 홍예종석까지 높이는 255㎝이다.

암문(暗門)은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은밀한 곳에 일반 성문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개구부를 내어 출입하는 성문의 일종이다

암문의 개구부 형태는 전부 평거식이며 장대석을 결구하여 천장을 만들고 있다. 목재 문비를 설치하여 개폐하였다.

지표조사에서 밝혀진 암문의 수는 모두 15개로 기존의 사료(11개)에 기록된 숫자보다 많아 이후 증축 시 추가된 것으로

판단된다. 다산산성의 수구문(水口門)은 지표조사 결과 4개소에서 확인되며, 그 중 2기는 1977년 복원되어 그 원형을

알 수 없고 다른 2기는 유실되고 흔적만 잔존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