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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풍경

화악산 적천사[碩川寺]

* 828년(흥덕왕 3)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중창했으며, 고승 혜철(惠哲)이 수행한 곳으로도 유명한 적천사의 대웅전


보조국사가 심었다는 큰 은행나무(수령 800여년)



지국천왕(持國天王)은 비파를,북방의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보탑을


남방의 증장천왕(增長天王)은 보검을,서방의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용과 여의주를 각각 손에 쥐고 있다


다기와 차,찻물을 늘 한 자리에 놓아 두고 아무나 와서 차를 마시라고 개방한 무차루(無遮樓)




적천사[碩川寺]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리 화악산(華岳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사기(寺記)에 의하면, 664년(문무왕 4) 원효(元曉)가

수도하기 위해 토굴을 지음으로써 창건되었다. 828년(흥덕왕 3)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중창했으며, 고승 혜철(惠哲)이

수행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고려시대에는 지눌(知訥)이 1175년(명종 5)에 크게 중창했으며, 당시 참선하는 수행승이 언제나 5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지눌의 중창 직전, 이 절에는 많은 도적떼가 살고 있었는데, 지눌이 가랑잎에 범 호(虎) 자를 써서 신통력으로 호랑이를 만들어 도적떼를 쫓아냈다는 전설이 전한다. 당시의 산내 암자로는 도솔암(兜率庵)·은적암(隱蹟庵)·백련암(白蓮庵)·

옥련암(玉蓮庵)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 건물의 일부가 소실되었고, 1664년(현종 5) 왕의 하사금으로 중수하였는데,

이 때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조성하였다. 1694년(숙종 20) 태허(泰虛)가 크게 중건하여 대찰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한말에 의병들이 이 절을 중심으로 활동하게 되자 관병들이 이 절의 누각과 요사채 등 일부 건물을 소각시켰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입구에 있는 천왕문(天王門)을 들어서서 조계문(曹溪門)을 지나면 중앙에 남향한 대웅전(大雄殿)이 있고, 그 좌우에 적묵당(寂默堂)과 명부전(冥府殿)이 있으며, 대웅전 뒤쪽으로 좌우에 조사전(祖師殿)과 영산전(靈山殿)이 있다. 그 밖에 요사채와 부목방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2호로 지정된 적천사괘불(碩川寺掛佛:관음탱화)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3호인 적천사목조사천왕기좌상이 있다. 괘불에서는 1981년 3월에 사리 7과가 발견되었다. 당시의 주지가 백일기도하던 중 괘불의 상단에 매달린 주머니를 발견하여 꺼낸 것이라고 한다. 그 뒤 새로 탑을 세워 이 사리를 봉안하였다. 이 밖에도 이 절에는 18기의 고승 부도가 있고, 절 앞에는 보조국사가 심었다는 큰 은행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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