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 행 지 : 해인사 13암자 순례길 / 경남 합천군
2. 산행일자 : 2024년 11월 10일(일) / 흐림
3. 산 행 자 : 아들과 함께
4. 산행경로 : 길상암>차량이동> 해인사 성보박물관~약수암~국일암~백련암~희랑대~지족암~해인사~용탑선원(암)~홍제암~원당암~금선암~삼선암~보현암~금강암~성보박물관(도상거리 약 10.5km)
5. 산행시간 : 3시간 00분(12:00~15:00)
6. 해인사 안내도
7. 산 행 기
※ 오늘은 해인사 암자 순례길이다. 해인사/가야산 소리길과 가야산 등산은 수차례 걸어 보았으므로 오늘은 절간 구경도 할 겸 해인사로 들어가 봅니다.
※ 해인사 홈피에 소개된 산내암자 16곳 중 13곳은 해인사 내에 위치하고 있고 길상암, 고운암, 청량사는 본절과 다소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 본절과 원거리에 있는 고불암은 차량으로, 청량산 등산 시 자주 방문하였던 청량사는 창고사진으로 대신합니다. 그리고 고운암은 사찰관계자에게 여쭈어 보았지만 ?
길상암은 해인사 동구에서 한 1 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으며, 백화 담을 위시하여 자연경관이 아름답기로 이름나있다. 1972년에 영암 대종사께서 창건한 이 암자에는 부처님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다.
해인사 성보박물관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장경판전과 팔만대장경이 모셔진 법보종찰 해인사에 위치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보물 11건(기탁 2건 포함) 및 9건의 지방유형문화재를 포함한 약 7천여 점에 달하는 불교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약수암은 비구니 수도처로서, 구한말인 1904년에 비구니인 성주스님이 창건하였고 1927년에는 도삼스님이 중건하였다고 한다
국일암은 부휴대사의 문하인 벽암 각성대사가 이곳에서 오래 주석하면서 인조 15년 곧 서기 1637년에 중건하였다고 전한다. 벽암스님은 일찍이 글씨와 군법에 능통한 스님으로, 조선조 인조임금 때에 남한산성을 축성한 공적으로 인조임금으로부터 원조국일대선사라는 시호를 받았는데, 국일암이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비롯되었으며 부휴스님, 고한스님, 벽암스님의 부도들이 모셔져 있다.
백련암은 산내 암자 가운데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있으며 경계 또한 탁 트여 시원하다.
암자 주변에 우거진 노송과, 환적대, 절상대, 용각대, 신선대와 같은 기암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어 예부터 백련암터를 가야산의 으뜸가는 절승지로 일컬어 왔다. 현재 이곳에는 원통전과 영자당을 위시한 요사채 몇 동이 조촐하게 서 있고 축대를 새로 쌓고 기도터를 새로이 신축하여 도량이 일신되었다.
희랑대는 자연이 이루어낸 기기묘묘한 지형과 빼어난 경치로 말미암아 일찍이 금강산의 보덕굴에 비유되곤 했다. 삼성전에 모셔진 독성님은 그 영험이 불가사의하다고 해서 기도처로 퍽 유명한데, 이곳에서 기도하여 부자가 되었다거나 하는 따위의 여러 영험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일반 신도들에게 친근한 암자이다
지족암은 신라말과 고려초에 걸쳐 살았던 희랑대사의 기도처로서 본디 이름은 도솔암이었다. 오래도록 터만 남아 있던 자리에 조선시대 후엽에 이르러 철종 7년 곧 서기 1856년에 추담대사가 창건하였는데, 뒤에 다시 고종 30년 곧 서기 1893년에 환운스님이 건물을 중건하면서 도솔의 의역인 지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근래에 일타스님께서 주석하시면서 도량의 면모가 새로워졌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 1985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481년(성종 12) 이후 확장된 해인사의 사찰규모는 창건당시보다 웅장하였으나, 그 뒤 수차례의 화재로 인하여 거의 불타 없어지고, 현존의 건물들과 함께 대적광전 역시 조선 말기에 중건된 것으로 보인다.
용탑선원(암)은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에 한 분이었던 용성스님을 위하여 창건된 이 암자는 스님의 사리탑을 수호관리하기 위하여 1945년에 창건되었으며 용탑전(龍塔殿)이라 불리기도 한다
홍제암은 해인사의 서편으로 일주문에서 한 이백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암자이며, 특히 사명대사가 입적한 곳으로 유명하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 이곳에 은거하던 사명대사는 광해군 2년에 속세 나이 예순일곱으로 입적하였는데, 광해군은 스님의 열반을 애도하여 자통홍제 존 자(慈統弘濟尊者)라는 익호를 내리고 이곳에 스님의 비를 세웠다. 그 뒤로부터 스님의 익호를 따라 이 암자를 홍제암이라 하였다. 뒷동산에는 평범한 석종의 모습으로 만든 사명대사의 부도가 모셔져 있다.
신라 왕실의 원찰로 세운 원당암은 큰절이었는데
대덕광전과 마주 보이는 비봉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래서 본디 이름을 봉서사라고 했다. 해인사 창건을 위한 기초 작업장의 역할을 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본절인 해인사보다도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또 역사가 오랜 만큼 풍부한 사적과 더불어 몇 차례의 중수 기록을 전하고 있다. 근대에 이르러 해운스님과 지금 이곳에 주석하고 있는 혜암 큰 스님께서 도량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금선암은 1945년에 하담스님께서 창건한 비구니 수도처로서, 큰절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암자이다.
삼선암은 1893년에 자홍스님께서 창건한 뒤로 1904년에 보찬스님과 지종스님 두 분이 중건한 바 있으며, 최근에 새로이 비구니 선원을 세운 것을 비롯하여 도량의 규모가 꽤 커졌으려니와 면모도 새로워졌다. 가까이에 문오 스님의 부도가 모셔져 있다
보현암은 1973년에 혜춘스님의 원력으로 세운 비구니 수행처이다. 전망이 탁 트여 가야산과 홍류동계곡이 한눈에 들어오는 절승지이다.
금강굴(암)은 비구니스님들의 수행처로서 보현암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원래 이곳의 지명이 오가리(五佳里)인데 이 다섯 가지의 아름다움이란 다음과 같다.
청룡과 백호와 전망(展望)과 문수보살의 정진과 보현보살의 교화, 이 다섯 가지가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이다. 금강암은 금강굴(金剛窟)이라고도 불린다.
해인사 고불암은 1200년 역사를 가진 해인사의 산내 암자로서 해인사 암자 중 가장 높은 해발 900m에 법당이 있으며, 전체적인 건축구조와 형상이 산내 암자 중 해인사와 가장 비슷하며 전통적인 목조건물과 현대적인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통사찰식 목조건물은 법당을 중심으로 양옆에 육화당, 벽안당이 있고 앞으로는 고불루가 있다.
해인사 고불암 진신사리 극락보탑은 스리랑카 종정스님
께서 기증하여 모셔온 부처님 치아 사리 탑입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의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창건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 절은 최치원(857~?)이 즐겨 찾던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통일신라 말기 이전에 이미 창건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절의 가람배치는 높은 석축 위에 남북 일직선상으로 놓여 있는 것이 특이하다. 중요문화재로는 석조석가불좌상(보물 제265호)을 비롯하여 3층석탑(보물 제266호)·석등(보물 제253호) 등이 있다.
고운암은 원래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선생이 살던 초막이라는 이곳은 백련암의 맞은편으로 그 전망이 아주 좋다.
해인사는 신라 의상대사의 법손인
순응(順應), 이정(利貞) 두 스님이
신라 제40대 애장왕 3년(802) 10월 16일
왕과 왕후의 도움으로 창건되었다.
해인사에 관한 종합적인 문헌으로 「가야산 해인사고적(伽倻山海印寺古籍)」이 있는데, 이는 해인사의 연기(緣起), 실화(失火)와 중창의 역사, 대장경의 인경(印經)에 관한 여러 사적과 문헌들을 모아 고종 11년(1874)에 판각한 것이다.
이 「가야산해인사고적」에 수록된 문헌가운데 똑같은 이름의 「가야산해인사고적」(고려 태조 26년에 이루어진 것)과 신라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신라가야산해인사선안주원벽기(新羅伽倻山海印寺善安住院璧記)」의 두 기록은 해인사의 창건에 대하여 비교적 소상하게 전해주고 있다.
※ 법보종찰 가야산 해인사 : http://www.haein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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