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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풍경

팔공산 환성사[環城寺]

* 835년(신라 흥덕왕 10)에 왕사 심지()가 창건하였으며 산이 성처럼 절을 둥글게 둘러싸고 있어서 환성사라 부름


자연석 덤벙주초 위에 기다란 네 개의 돌기둥을 일렬로 세우고 맞배지붕을얹은 일주문

통도사나 범어사의 일주문보다 그 규모가 크다는 돌기둥 일주문

가을날, 환성사의 전경



용연


수월관(


삼층석탑과 대웅전


요사체

심검당

명부전


요사


고려 때에는 대선사()가 난 것을 기념하여 대웅전 앞에 커다란 연못을 팠다고 함

부도


통도사나 범어사의 일주문보다 그 규모가 크다는 돌기둥 일주문


환성사[環城寺]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팔공산(八公山)에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하양읍 하기리 팔공산 기슭에 있으며, 835년(신라 흥덕왕 10)에
왕사 심지()가 창건하였다. 산이 성처럼 절을 둥글게 둘러싸고 있어서 환성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전한다.
1635년(인조 13)에 신감()이 중창하고, 1897년(광무 1)에는 긍월()이 다시 세운 것이 오늘에 이른다.
대웅전과 명부전·심검당·수월관()·산신각·천태각 등이 남아 있고 부속암자로 성전암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고려 말 조선 초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정면 5칸·측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보물 제562호로
지정되었다. 대웅전 옆에있는 심검당은 환성사의 강당으로, 정면 3칸·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역시 고려 말 조선 초 건물이며,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4호로 지정되었다. 수월관은 이 절의 문루인데, 예전
대웅전 앞에 있던 연못에 잠긴 달을 수월관에서바라보는 풍경이 가히 일품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다.
이밖에 삼층석탑과 돌화로, 일주문 돌기둥, 부도전 등이 남아 있다.
1856년(철종 7)에 편찬된 하양현의 읍지 《화성지()》에 따르면 환성사는 조선시대에는 임고서원에
속하였고, 숙종 때는 박서봉()과 황윤중()이 여러차례 상소하여 하양향교에 속하게 되었다.
입구의 일주문은자연석 덤벙주초 위에 기다란 네 개의 돌기둥을 일렬로 세우고 맞배지붕을 얹었다. 이익공의
다포식공포를 짰으며, 양쪽 지붕의 합각 부분에는 풍판을 달았다. 양산 통도사·부산 범어사·강릉의 낙가사에도
돌기둥 일주문이 있으나, 통도사나 범어사의 일주문보다 그 규모가 크다.
이 절 20m 아래쪽에는 비석 3기와 부도 6기로 이루어진부도밭이 있다. 비석의 내용이나 부도들의 주인은 알 수
없지만 석종형·원구형 등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짐작되는 이 부도밭은 옛날 전성기 환성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고려 말 환성사에 큰불이 나 거의 폐사에 이른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절 입구에는 자라처럼 생긴 자라바위(또는 거북바위)가 있었는데 창건주인 심지는 "이 바위가 있는 한 절이
번창할 것"이라 예언하였다. 자라바위 덕분인지 하루가 다르게 신도가 늘어나면서 번창하였다.
고려 때에는 대선사()가 난 것을 기념하여 일주문을 세우고, 대웅전 앞에 커다란 연못을 팠다. 선사는
"연못을 메우면 절이 쇠락할 것"이라고 예언하였고, 승려들은 선사의 유지를 받들어 연못을 잘 돌보았다.
그러던 어느 해, 신도들이 너무 많이 찾아오는 것이 귀찮아진 주지가 자라바위의 목을 잘라버리도록 하였다.
그러자 연못이 핏빛으로 물들었고, 이를 기이하게 여긴 신도들이 더 많이 몰려들었다. 이를 또 성가시게 여긴
주지의 명령으로 연못을 메우기 시작하자 연못 속에서 금송아지가 한 마리가 날아올라 구슬피 울며 사라졌고,
연못을 다 메우자 절 전체에 불이 붙기 시작하여 대웅전과 수월관만 남긴 채 모두 태워버렸다. 이후 선사들의
예언대로 신도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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