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7년(신라 진흥왕 28) 신승(神僧)이 창건하였으며 당시 소작갑사(小鵲岬寺)라고 불리웠던 대비사(大悲寺)의 대웅전
보물 제834호로 지정된 대웅전
박곡지와 억산,범봉,운문산의 겨울풍경
요사체
향로전
삼성각
대비사 [大悲寺]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운문산(雲門山)에 있는 사찰
향로전은 대웅전 오른쪽에, 요사는 왼쪽에 있다. 유물로는 절 입구 동쪽 산기슭에 소요(逍遼) 태능(太能: 1562∼1649)과 취운(翠雲) 학린(學璘: 1575∼1651)의 부도를 비롯한 11기의 부도가 모여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567년(신라 진흥왕 28) 신승(神僧)이 창건하였다.
여기서 신승은 승려의 이름이 아니라 능력이 뛰어난 승려를 뜻하는 말이다. 창건 당시에는 소작갑사(小鵲岬寺)라고
하였다.
창건에 얽힌 설화가 전한다. 557년 한 신승이 운문산에 들어와 현재의 금수동(金水洞) 북대암(北臺庵) 자리에
창건에 얽힌 설화가 전한다. 557년 한 신승이 운문산에 들어와 현재의 금수동(金水洞) 북대암(北臺庵) 자리에
초암을 짓고 수도하였다. 3년이 지난 어느날 산과 계곡이 진동하여 새와 짐승들이 놀라 울었다.
신승은 이 때 이 산에 오령(五靈)이 살고 있음을 알고 7년에 걸쳐 5개의 사찰을 지었다.
신승은 이 때 이 산에 오령(五靈)이 살고 있음을 알고 7년에 걸쳐 5개의 사찰을 지었다.
산 중앙에는 대작갑사(大鵲岬寺), 동쪽에는 가슬갑사(嘉瑟岬寺), 남쪽에는 천문갑사(天門岬寺), 서쪽에는 소작갑사
북쪽에는 소보갑사(所寶岬寺)를 각각 지었던 것이다. 이 중 천문갑사는 지금의 운문사(雲門寺)이다.
600년(진평왕 22) 원광(圓光)이 중창하고 절 이름을 대비갑사(大悲岬寺)로 바꿨으며, 신라 말 고려 초 후삼국이
600년(진평왕 22) 원광(圓光)이 중창하고 절 이름을 대비갑사(大悲岬寺)로 바꿨으며, 신라 말 고려 초 후삼국이
다툴 때 다른 4개 사찰과 함께 불에 탔다. 고려 인종(재위: 1123∼1149) 때 원응국사(圓應國師) 학일(學一)이
중창하였다. 본래는 박곡리 마을 내에 있었으나 학일이 중창하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에 대웅전을 중수하였고, 1950년 6.25전쟁으로 불에 타자 금천면에서 성금을 모아 응교(應敎)가
일제강점기에 대웅전을 중수하였고, 1950년 6.25전쟁으로 불에 타자 금천면에서 성금을 모아 응교(應敎)가
재건하였다
대비사라는 절 이름은 불교의 대자대비에서 유래한 말인데, 언제 대비갑사가 대비사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향로전·요사채가 있고, 산내 암자로 도솔암과 옥련암이 있다. 이 중 보물 제834호로 지정된
건물로는 대웅전과 향로전·요사채가 있고, 산내 암자로 도솔암과 옥련암이 있다. 이 중 보물 제834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 1685년(숙종 11) 중건했다는 기록을 담은 문서가
전한다.
향로전은 대웅전 오른쪽에, 요사는 왼쪽에 있다. 유물로는 절 입구 동쪽 산기슭에 소요(逍遼) 태능(太能: 1562∼1649)과 취운(翠雲) 학린(學璘: 1575∼1651)의 부도를 비롯한 11기의 부도가 모여 있다.
[출처] 대비사 [大悲寺 ]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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