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산산성(架山山城) 내성의 가운데 있는데 80평 규모이며 일명 가암(架巖)이라고도 불리우는 가산바위의 정상부
1. 산 행 지 :가산(901m)/ 경북 칠곡군,군위군
2. 산행일자 : 2011년 04월 02일(토) / 흐림
3. 산 행 자 : 친구와 함께
4. 산행경로 : 진남문-남포루-가산바위-서문-중문-용바위-가산-할미,할비바위-치키봉-진남문(이정표 기준10.9km)
5. 산행시간 :3시간 20분(09:00~12:20)
6. 산행지도
7. 산 행 기
사적 제216호로해발 901m에서 600m에 이르는 계곡을 이용하여 쌓은 포곡식과 테뫼식으로 축조된 가산산성의 진남문
영남제일관(진남문)을나와우측 성곽길로 오른다
세월의 무개를 이기지 못하였지만 산성의 모습은 유지되고 있다
거대한 바위들이 나 딩굴고 있는 소나무 숲길을 오르고....
새로 설치된 안전시설물 인근에 전망바위가 있다
전망바위에서 내려다 보면 현방마을과 삼봉이 보인다
안부의 거대한 바위를 지나 가파른 성곽길을 오른다
우회길이 있지만 곧장 암릉길로 오른다
뚜렷한 산성길이 또다시 이어진다
오늘 산행구간중 가장 난해한 암릉길이 기다리고 있다
암릉길에 서있는 소나무를 붙잡고 오르고....
근래에 새로 설치된 계단길에 올라 남포루 전망대에 닿는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 올라오는 적을 향해 포를 쏘아 적의 사기를 저하 시켰다는 설이 전해오는 닜고지형적으로 이곳이 전망대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인 남포루의 암릉이다
치키봉과 부계봉(783.6m)넘어로 팔공산의 서부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좋은 곳이다
369.8봉, 도덕산(660.2m), 응해산1(526.4m)와 응해산2(506.7m)의 전경
둔덕으로 보이는 가산 정상
남포루 방어를 위해 포를 설치했고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던 기지였던 남포루 터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은밀한 곳에 일반 성문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개구부를 내어 출입하는 성문의 일종인 암문(暗門)
여릿재 갈림길인 구조목 07-16번에서 산성길로....
15개의 암문(暗門)존재 하다는데 가산바위 까는길에 두번째의 암문을 지난다
가산바위까지 성곽길이 이어지는 익숙한 길이 이어진다
가산바위 입구
사면이 깎아지른 듯이 우뚝 솟아 있는 바위로,상면에80평 정도의 넓은 평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고승 도선(道詵)이지기(地氣)를 잡으려고 바위 위 구멍 안에 쇠로 만든 소와 말의 형상을 묻었는데 조선시대 관찰사 이명웅(李命雄)이성을 쌓으면서 없애버렸다는 전설이 전하는 곳이다
가암(架巖)이라고도 불리우는 가산바위(우측 바위 표면에 세겨져 있음)
가산바위에서 바라보니 땅재 옆으로 유학산.황학산,백운산의 전경
두무실(계정사 갈림길을 지나 서문과 852봉(항학지맥 분기봉) 방향으로 진행한다
가산산성의 제일 북쪽 돌출된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원형 그대로 보존된 듯 그 형태가 온전한 서문시간상 북문은(0.7km)는 다음에 가기로 하고 다시 돌아나와 준문으로 향한다
조선조 인조17년 외적의 칩입을 막기위해 가산산성을 지키던 장수들이 식수로 사용하였던 장군정이란 샘터
당시 성 안에는 샘과 우물이 20여 곳가량 있었지만 다 없어지고 현재는 이곳만 마르지 않고 남아 있다
가산산성 내성의 중앙을 가로막아 내성의 1/2을 보호하기 위하여 1741년 중성 축조 시에 만들어진 중문
중문에서 왼쪽길로 들어서 내려가면 가산산성내 4개의 연못중 하나인 습지를 지나 봄철에 한창인 복수초 군락지를 따라...
복수초
돌출바위 전망대에서 바라본 용바위와
펜스전망대가 있는 유선대
돌출바위 전망대에서 바라본 팔공산의 전경
가팔환초의 한축을 이루는 가산[架山] 정상에서
가산산성에는 정식 문 이름이 붙여진것 이외에 군대군대 사람이 드나들수 있게 암문(暗門)이 많들어져 있다
동문 갈림길 827봉에서 좌측 한티재 방향으로....
군데군데 나타나는 암문(暗門)
할미,할비바위
산세가 곡식을 까부를 때 쓰는 키와 닮아서 치키봉이라고 불렀다 한다
능선 갈림길에서 좌측 아래로....
정자 쉼터
대나무 숲을 지나....
가산산성 입구에 내려선다
다양한 크기의 석탑과 석등이 배치되어 있는해원정사*解圓精舍)
가산산성 진남문
새로 정비된 가산산성 주차장
가산산성은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가산리 산98-1외 11필지에 위치하는 조선시대의 석축산성으로사적 제216호로 지정되었으며, 주변은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설정되어 있다. 산성은 해발 901.6m의 천험(天險)의가산골짜기를 이용하였고 내·중·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사대문지와 암문·수구문·건물지 등의 시설이 남아있다.성(城) 내에는 물이 풍부하여 산성 입보의 시설을 갖추고 있고 내·중·외성은 각기 시대에 따라 따로 축성되었다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잇따른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 가산 요새에 삼중(三重)으로 축성되었다.
『칠곡 가산산성 지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내성의 총 길이는 5.071㎞, 면적은 587,433㎡이다. 외성의 총 길이는 내성축조 때 이미 만들어진 동문 좌우 성벽 454m를 제외하고 4.669㎞이며, 면적은 1,509,289㎡이다. 내성을 동서로 가로막아초축(初築)의 내성 남쪽 1/2을 중성의 공간으로 활용하였는데 중성만의 면적은 359,451㎡이다. 동문과 중문의 좌우 연결성벽을 포함한 가산산성축성 총 길이는 11.041㎞이며, 동문·중문의 좌우 연결 성벽을 제외하고 내성·외성 모두를 합친가산산성의 총 둘레는 10.164㎞가 된다. 성안의 총 면적은 2,096,722㎡이다.
동문은 외성 축조 이전까지 내성의 정문이었다. 개구부의 정면은 남동향이며 입면 모양은 윗부분을 둥글게 한홍예문(虹霓門) 형식으로서, 좌우에 길이 168㎝의 장방형 홍예기석(虹霓基石)을 놓고 거기서부터 정상으로 가면서 원호를이룬 전형적인 홍예문 양식이다. 개구부의 폭은 275㎝이며, 지대석에서부터 홍예종석(虹霓宗石)까지의 높이는 390㎝이다동문의 좌우 육축부(陸築部)는 방형에 가깝다. 동측의 것은 붕괴가 심한 편이고, 서측의 육축부 역시 양호한 상태는 아니다.동문 육축부의 상면에는 문루를 두었던 주초석을 발견할 수 있다.
남문은 외성의 정문인 동시에 내·외성 전체의 정문이다. 개구부는 남서향이며, 1954년의 집중 폭우로 유적의 대부분이유실되었는데, 이후 1977~1980년에 걸쳐 남문루 및 남문과 암문·수구문·여장 185m를 복원·중수하였다. 남문의 육축부는방형이나 동문과 같이 전면을 돌출시킨 적대 시설은 찾아볼 수 없다. 남문의 개구부는 동문과 같은 홍예문으로 1단의홍예기석을 세우고 홍예종석 좌우로는 4매의 홍예석을 두었다. 개구부의 폭은 341㎝, 바닥에서 홍예종석까지의 높이는330㎝이다. 남문 육축부 상면에는 벽돌을 쌓은 여장을 설치하여 문루를 보호하였고, 그 좌우로는 성돌과 같은 석재를이용하여 평여장을 시설하였다
북문은 형태가 평거식(平据式)으로 개구부의 규모는 폭 256㎝, 높이 180㎝이며, 천정은 길이 335㎝, 폭 72㎝, 두께 52㎝의장방형 판상석 8매를 결구(結構)하여 놓았다. 성문벽 외측으로 돌출된 방형의 적대 시설을 갖추고 있어 암문과는구별이 된다.
서문은 가산산성의 제일 북쪽 돌출된 부분에 위치한다. 서문은 북문과 마찬가지로 평거식 개구부를 하고 있다.성문의 바깥쪽으로는 본 성벽에서 돌출 되어진 적대 시설이 있으며 성문 안쪽으로는 육축부를 보호한 옹벽이 마련되어 있다.개구부의 형태는 좌우로 1매의 장대석을 세우고 상면으로는 길이 287㎝, 폭 75㎝, 두께 45㎝, 판상 석재 7매를 결구하여 놓아천장석을 하고 있다. 개구부의 폭은 260㎝, 높이 180㎝로 북문과 크기가 거의 같다. 서문의 상면에는 원형 주초석이 유존하고있어 문루를 두었다고 추정된다.
중문은 내성의 중앙을 가로막아 내성의 1/2을 보호하기 위하여 1741년 중성 축조 시에 만들어진 문이다. 1954년 대홍수 때유실된 남문루·남문·수구문·여장 등을 복원할 때 중문도 같이 복원·중수하였고, 1992년에 2차로 중문만을 다시 보수하여오늘에 이르고 있다. 개구부의 입면 상태는 홍예식으로 중심점이 홍예기석 상에 걸쳐지는 반원형 홍예의 형태를 취하고있다. 홍예기석은 다석식 기석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홍예기석 좌우로 5매의 홍예석들을 조립하여 놓아 홍예종석에 이르고있다. 중문의 정면은 동남향이며, 개구부 정면의 폭은 220㎝, 바닥에서 홍예종석까지 높이는 255㎝이다.
암문(暗門)은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은밀한 곳에 일반 성문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개구부를 내어 출입하는 성문의 일종이다암문의 개구부 형태는 전부 평거식이며 장대석을 결구하여 천장을 만들고 있다. 목재 문비를 설치하여 개폐하였다.지표조사에서 밝혀진 암문의 수는 모두 15개로 기존의 사료(11개)에 기록된 숫자보다 많아 이후 증축 시 추가된 것으로판단된다. 다산산성의 수구문(水口門)은 지표조사 결과 4개소에서 확인되며, 그 중 2기는 1977년 복원되어 그 원형을알 수 없고 다른 2기는 유실되고 흔적만 잔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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