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 산행지, 비슬산 천왕봉
1. 산 행 지 : 비슬산(1,084m) / 대구광역시, 경북 청도군
2. 산행일자 : 2024년 08월 30일(금) / 맑음
3. 산 행 자 : 홀로
4. 산행경로 : 공영주차장> tour bus> 대견사 주차장-월광봉-마령재-헐티재 갈림길-천왕봉> 헐티재 갈림길-참꽃군락지-대견사-대견사 주차장> tour bus> 공영주차장(안내도 기준 6.0km)
5. 산행시간 : 2시간 00분(12:40~14:40)
6. 산행안내도
7. 산 행 기
억새는 파란 대롱에 하얀 꽃이 필 때가 적격이다.
작년(2003년)에는 누렇게 변색될 때쯤, 억새 산행지였던 부산의 금정산 장군봉, 밀양 재약산 사자봉과 수미봉, 양산 천성산 화엄벌 산행이었지만 올해는 근교에 있는 비슬산으로 ~~~
비슬산은 그동안 수없이 오른 지역 근교산이다. 최근기록은 3월에 눈(雪) 산행과 무더웠던 7월에 축지법(bus tago) 이용하여 잠시 다녀온 산이다.
오늘도 축지법(bus tago)을 이용하여 올라가 봅니다
월광봉(月光峰)의 명칭은 "대견봉(大見峰)의 남쪽에 월선봉(月先峰)이 있다"라는 옛 기록에서 유래한 것으로 선(先)을 광(光)으로 잘못 기록하여 표기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기록에 나타나는 것과는 달리 현재의 월광봉은 대견봉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표기가 잘못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봉우리는 동쪽의 극락골에 있었던 극락사라는 절에서 유래한 극락봉이라는 명칭이 더욱 타당하다는 의견도 있다.
좌측은 수성골~유가사 가는 길, 우측은 토담마을~용천사 가는 길이고 천왕봉 가는 길은 직진하여 쭈~욱 올라갑니다
산 정상의 바위모양이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비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최고봉은 대견봉(大見峰)이었으나, 2014년 10월 국가지명위원회에서 천왕봉으로 변경했다. 남쪽으로 조화봉(照華峰:1,058m)·관기봉(觀機峰:990m)과 이어지며, 유가사(瑜伽寺) 쪽에서 올려다보면 정상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바위 능선이 우뚝 솟아 있다.
좌측은 토담마을~용천사 가는 길, 우측은 수성골~유가사 가는 길, 같은 시간에 bus tago 올라오신 분들이었네?
둥글게 보이는 축구공의 정식 명칭은 "낙동강 홍수통제소 비슬산 강우레이더 관측소"라고 합니다
대견사 마애불은 자연 동굴 입구에 음각(陰刻)으로 새겨져 있다. 선각의 마모가 심하여 마애불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렵고 따라서 조성 시기도 추정이 어렵다. 다만 대견사 창건과 비슷한 시기인 흥덕왕(826∼836) 때로 추정할 수 있는 정도이다.
자연 동굴 내부에는 1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참선을 하던 곳으로 추정되며, 동굴 입구 머리맡 바위 전면에는 음각의 선각 불상(線刻佛像)이 새겨져 있다.
암벽 위에 2층 기단을 구축하고 삼층 탑신을 올렸는데, 전체적으로 완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견사지 삼층석탑은 산자연 정상의 암반에 건립되어 넓은 시계가 확보된 점으로 보아 명산에 절을 세우면 국운이 흥한다는 불교 신앙에 따라 건립되었으며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통일 신라 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창건자는 미상이나, 신라 흥덕왕 때 창건된 사찰이라고 전한다. 전설로는 당문종(文宗)이 절을 지을 곳을 찾고 있었는데 하루는 낯을 씻으려고 떠놓은 대야의 물에 아주 아름다운 경관이 나타났다. 이곳이 절을 지을 곳이라 생각한 문종은 사신을 파견하여 찾게 하였다. 결국 중국에서는 찾을 수 없게 되자 신라로 사람을 보내어 찾아낸 곳이 이 절터이다. 이 터가 대국(大國)에서 보였던 절터라 하여 절을 창건한 뒤 대견사라 했다고 한다
조화봉(照華峰)은 "비슬산(琵瑟山) 아래 흘러가는 낙동강 물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곳 봉우리에 절을 지을 당시 당나라 사람들이 인근의 봉우리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며 바라보니 중국의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에서 유래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 봉우리에 '비칠 조(照)'에, '아름다울 화(華), 즉 조화봉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비슬산(琵瑟山)은 대구 달성군과 경북 청도군, 경남 창녕군의 사이에 있는 높이 1,084m의 산이다. 1986년 2월 22일에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신 증동국여지승람'과 '달성 군 지'에는 비슬산을 일명 포산(苞山, 수목에 덮여 있는 산)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유가사사적(瑜伽寺寺蹟)'에는 산의 모습이 거문고와 같아서 비슬산(琵瑟山)이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