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산행기

아들과 함께 대구근교산 용암산-대암봉 산행

산으로간 꼬등어 2010. 5. 11. 11:17

* 용암산성 푸른초원과 가팔환초 환성산,낙타봉,초례봉의 풍경

1. 산행 지 : 용암산(379m),대암봉(465m) / 대구광역시

2. 산행일자 : 2010년 05월05일(수) / 맑음,개스

3. 산 행 자: 아들과 함께

4. 산행경로 : 도동 태봉교-용암산성-옥천-대암봉-바리고개-도동 태봉교(도상거리 약4.5km)

5. 산행시간 : 2시간 10분(13:50~16:10)

6. 산행지도(환성산군 지형도)

7. 산 행 기

팔공산 I.C에서 바라본 용암산과 대암봉의 전경


대구 포항간 고속도로 교각 아래 용암산성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산행들머리와 용암산성 안내판


비탈진을 오르면 고속도로와 측백수림 군락지가 보인다


두동강난 향산(160m)과 대구-포항간 고속도로


달성측백수림(천연기념물 제1호)군락지와 관음사의 전경


간간이 보이는 용암산성 이정목을 따라 오르고....


등로 좌우에는 잡풀이 무성하개우거져 있다


잔돌이 많은가 보니 산성이 다가오는 것이 느낀다


등로 좌우에는 각시붓꽃을 위시해 여러가지 야생화가 피어있다




푸른초원을 연상케하는 용암산성

용암산성 안내판

용암산성에서 바라본 대암봉과 낙타봉,초례봉,요령봉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푸른초원, 용암산성의 경치


용암산성 초원에서...


이름 모를 야생화가 지천에 피어난 용암산성의 경치


허허벌판인 용암산(379m)의 정상


용암산에서


용암산에서 바라본 문암산,응봉,응해산,도덕산의 전경


용암산성의 푸른초원과 환성산,낙타봉,초례봉의 풍경


푸른초원을 걸으며 대암봉으로,,,,


가팔환초 끝자락 환성산,낙타봉,초례봉을 보며 풍경길을 걷는다


팔공산 봉부능선(비로봉-삿갓봉-은해봉-관봉)의 전경


463봉 넘어로 보이는 환성산


용암산성 끝자락에서 바라본 대암봉


좌측으로 내려가면 임진왜란 당시 백성들과 의병들이 팠다는 옥천이 있다


옥천 설명문


옥천에서 당겨본 환성산과 낙타봉,초례봉의 경치


작은 봉우리를 넘어 평탄한 산길을 오른다


대암봉 부근의 암릉지대을 오르고....


대암봉의 전망대 역활을 하는 상여듬바위


대암봉(465m)


대암봉에서


대암봉에서 바라본 환성산,낙타봉,초례봉의 전경


요령봉,감태봉 넘어로 보이는 초례봉


개스로 인해 희미하게 보이는 팔공산의 주능선


생구암으로 갈려다 차량 불편으로 인해 다시 용암산 방향으로 내려가 바리재 능선으로 하산한다

희미한 길을 내려가면....

도동과 둔산동을 연결하는 바리재(바리고개)에 내려선다


바리재(바리고개)


길을따라 내랴오면 산행 들머리에 이른다

용암산성[]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용암산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이며

1988년 5월 30일 대구광역시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었다. 이 산성은 불로동에서 도평동으로 통하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다.

해발고도 380m의 용암산 중심으로 가파른 경사면을 이용하여 쌓았는데, 지형상 당시 군사적 요충지로 여겨지는

안심()과 하양()으로 통하는 길목이었다.

대구지역에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성은 대체로 대구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는데 하천변의 낮은 구릉상에 축조된

것과, 교통요충지가 되는 도로변의 높은 산에 축조된 것이 있다. 낮은 구릉상에 쌓은 성은 대체로 규모가 작은 토성이며

물 가까이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비교적 이른 시기의 것들이다. 이에 비해서 높은 산에 쌓은 성은 넓은 지역을

조망할 수 있는 교통요충지에 위치하는데, 이는 발달된 무기나 대규모의 전투를 치를 수 있는 지세를 택하여 쌓은 것이다.

용암산성은 후자에 속한다.

용암산성은 성벽의 둘레가 1,300m 정도의 큰 규모이다. 산 정상은 평평하며 동서 양쪽이 45도 가량의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서쪽과 남쪽의 산기슭과 능선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경사지에는 대규모의 인공절벽을 만들어 외부의 침입을 막도록 하였다.

이 인공절벽에는 성문지()로 추정되는 입구가 있다. 산성의 주변에서 신라의 토기 조각이 많이 발견되는 점으로 보아

축성 시기는 삼국시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으로 대구지방이 초토화되었을 때 인근에서 일어난 의병들이 이곳에

모여 활동했다는 구전으로 보아 그 후대에까지 사용되었던 산성이라 할 수 있다. 성안의 동북쪽에는 임진왜란 때 팠다는

옥천()이라는 우물터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