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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백의종군로

남도 이순신 백의종군로② (남원 동림교~운봉초교)

1. 산 행 지 : 백의종군로(남원 동림교~운봉초교)/ 전북 남원시

2. 산행일자 : 2020년 05월 17일(토) / 맑음, 미세먼지

3. 산 행 자 : 아들과 함께

4. 산행경로 : 동림교-요천강변길-이백교-오동초등-남원스포츠클럽-백암1교-평촌마을-양가저수지-연치골-여원치 마애불상-여원재-운봉삼거리-운봉초등학교(이정표 기준 15.8km)

5. 산행시간 : 4시간 30분(11:40~16:10)

6. 산행안내도

7. 산 행 기

 

* 백의종군로(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조정의 명령에 따르려고 하였지만 바닷길이 워낙 험난하고 일본 수군의 복병에 의한

기습공격을 경계하여 신중한 군사작전을 폈다.

이 때문에 이순신장군은 1597년 2월 26일에 "조정을 속이고 적을 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한산도에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된 후 3월 4일 투옥되었다.

그해 4월 1일 (28일간 옥고를 치르고) 출옥하였으나 선조에게 백의종군(일체의 관직과 벼슬없이 평복으로 참전하는

처벌)하라는 명을 받고 4월 1일 (서울) 의금부를 출발하여 6월 8일 (합천) 율곡까지 권율도원수를 만나러 갔다.

백의종군길은 이 행로를 의미한다

* 여원치 마애불상

1998년 11월 27일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62호로 지정되었다.

여원재 낭떠러지에 병풍처럼 둘러진 바위 가운데 양각되었다. 높이 230cm, 어깨 너비 120cm이다.

다소 두꺼운 가사, 신체 표현에 육감적인 면이 부족한 점 등으로 미루어 고려말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상호(相好)는 원형감이 풍부하며 미소를 머금었는데 눈·코·입은 형태가 뚜렷하다. 가사는 통견으로 옷주름은 완만한

원형 형태지만 선이 굵어 무거워 보인다. 가사가 두껍고 광배는 음각으로 형식적으로 표현했으며 상체만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 두상과 손목 등 일부는 훼손된 상태이다

 

* 여원재(여원치)

해발 477m의 여원치는 그 이름의 유래가 깊다. 교통이 불편하던 옛날, 남원과 운봉, 함양을 오가는 길손이라면

반드시 거쳐야했던 이 고개의 유래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던 때 이곳 운봉현까지 왜구의 침략이 잦았다.

고개마루 주변 주막집을 들락거리던 왜구무리들은 주모에게 손찌검을 했다. 이에 주모는 날이 시퍼런 칼로 왜구의

손을 탄 왼쪽 가슴을 잘라내고 자결한다. 한편으로 왜구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운봉에 당도한 이성계는

꿈자리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파로부터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날짜와 전략을 계시받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

이성계는 꿈에 나타난 이 노파가 왜구의 손찌검으로부터 몸을 지키고 자결한 주모의 원신이라고 믿고,

고개마루 암벽에 여상을 암각한 다음 주모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사당을 지어 여원이라고 불렀다.

이런 사연으로 여원치라는 명칭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현지 주민들은 이 여원치를 연재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필시 여원의 이름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짐작된다.

이렇듯 이 고개 이름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 됐으며 오늘날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