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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2코스(운봉-인월)

1. 산 행 지 : 지리산 둘레길 2코스(운봉-인월)

2. 산행일자 : 2016년 5월 07일(토) / 맑음, 황사

3. 산 행 자 : 아들과 함께

4. 산행경로 : 운봉읍-서림공원(0.2km)-북천마을(0.8km)–비전마을(2km)–흥부골자연휴양림(2.9km)-월평마을(1.5km)–구인월교(0.2km)(9.3km)

5. 산행시간 : 2시간 45분(10:45~1330)

6. 산행안내도

7. 산 행 기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동천리와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를 잇는 9.9km의 지리산길. 운봉-인월 구간은 오른쪽으로 바래봉, 고리봉을 잇는 지리산 서북 능선을 조망하고 왼쪽으로는 고남산,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바라보며 운봉고원을 걷는 길로 옛 통영별로 길과 제방길로 구성된다. 9.9km 전 구간이 제방길과 임도로 되어 있어 길 폭이 충분히 넓어 여럿이 함께 걷기에 좋은 평지길이고, 황산대첩비, 국악의성지, 송흥록 생가 등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요소들을 골고루 즐기면서 걷기에 좋은 곳이다.

 

8.운봉
 
1.운봉읍
운봉은 1일과 6일로 끝나는 날에 장이 서는데, 주로 운봉과 주천에서 많이 오며 각종 잡화, 곡물, 옷 등이 주로 팔리며 과거에는 목기와 곶감으로 유명하였다.* 지리산북부권역 장 : 1,6일 – 운봉장/ 2,7일 – 함양장/ 3,8일 – 인월장/ 4,9일 – 남원장/ 5,10일 – 마천장
각종 장꾼들이 이지역의 장터를 빙빙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았다.

 

 
 

 

1.서림공원장승

2.서림공원
서천리 선두숲으로 불리었다. 서림공원에 들어서면 석장승이 눈에 먼저 띈다. 운봉전체를 지키는 방어대장군과 진서대장군. 운봉사람들이 각별히 아끼는 석장승들이다.

 

 
 
 
 
 
 
 
2.북천마을
3.북천마을운봉 읍내의 북쪽 냇가 마을. 소나무가 우거진 마을이라 벽송동(碧松洞). 객사가 있는 마을이라 객사마을로도 불리었다. 석장승 2개가 늠름하게 마을을 지키고 있다. 동방축귀대장군과 서방축귀대장군이다. 이 둘은 개성이 뚜렷한 얼굴을 가졌다.

 

3.신기마을

4.신기마을

선조 28년(1595) 임진왜란이 휴전상태에 접어들어 왜적이 잠시 철수하고, 영남이 아직은 안정을 찾지 못하고 혼란스런 때 이곳에 터를 잡은 입향조는 인동 장씨 장덕복(長德福)이었다. 영남의 전란에 고통을 받다가 지리산이 바라보이고 우뚝 솟은 운봉 고원이 마을을 보호하고 만복이 자손대대로 이어지는 명당터인지라 새 삶을 시작하는 터전이란 뜻으로 ‘새터(신기,新基)’라 하였다. 소(牛) 형국인 마을 북쪽 쇠잔등이가 잘려 마을의 쇠한 기운을 막고자 주민들이 직접 토성(土城)을 쌓았다.

 

4.비전마을

5.비전마을

황산대첩비가 세워지고 이 비각을 관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 마을이 비(碑) 앞에 있다 하여 마을 이름을 비전(碑前)으로 불리게 되었다. 또한 마을 5리 전에 하마정이 있어 말을 탄 관리가 황산 대첩비를 지날 때면 하마비(下馬碑)가 서 있는 이 곳에서 말을 내려 걸어와 비 앞에서 절을 하였다. 이곳에는 구한 말까지 2층 정자가 있어 주변의 주막과 기녀(기생)와 소리꾼, 가마꾼(轎軍)이 상주하던 곳이었다. 그래서 비전을 역촌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조선말 동편제의 가왕(歌王)이라 일컫는 송흥록과 송만갑이 태어난 곳이고 명창 박초월이 성장한 곳으로 동편제의 고향으로 국악의성지가 있는 곳이다. 비전 마을이 동편제의 발상지가 된 것은 이곳 하마정과 무관하지 않다.

 

5.군화마을

6.군화마을

1961년 대홍수 때 소멸된 화수리 이재민들의 가옥을 군인들이 주둔하며서 13가구를 건립하였는데, 이주 후 마을 이름을 ‘군인들이 지은 화수 마을’이란 뜻으로 군화동(軍花洞)이라 부르게 되었다.

 

6.월평마을2

7.월평마을

운봉에서 박씨가 처음 입주하고 새마을 신촌으로 불리다가 후에 마을 형국이 반월형이라 월평(月坪)이라 불렀다. 또는 마을 터가 동쪽 팔랑치를 마주하고 있어 달이 뜨면 정면으로 달빛을 받는다. 월평(月坪)이란 마을 이름이 말하여 주듯이 ‘달이 뜨면 바로 보이는 언덕’이란 뜻으로 월평이라 하였다. 1800년대 후반 천석꾼이 운봉 박씨가 이곳에 터를 잡고 사람을 모아 살기 시작하였다.

 

7.인월3

8.인월면

인월면은 예로부터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교통의 요지로 서울, 남원, 함양 등지에서 접근이 쉽다. 인월에서 비전마을로 가는 길은 조선시대의 7대 대로 중 하나인 통영별로의 일부로 이 길은 비전에서는 여원재를 거쳐 남원, 오수, 전주를 거쳐 서울로 이어지고, 인월에서는 팔랑치, 함양을 거쳐 진주로 이어지던 옛길이다.